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인터넷트렌드
불여우야, 재주를 넘어라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버리자

최호찬  
조회수: 2872 / 추천: 52
www.mozilla.or.kr/mozilla/zine
인터넷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사의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 이하 IE)’일 것입니다. 현재 국내외의 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이 웹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IE의 독점에 가까운 보급률은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또한 IE를 기반으로 실행되는, 즉 IE가 없으면 안 되는 다른 응용프로그램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균형 속에서 얼마 전 새롭게 발표된 모질라 파이어폭스(Mozilla Firefox, 이하 파이어폭스) 0.8 웹브라우저는 이런 상황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파이어폭스는 이전 0.7 버전까지 파이어버드(Firebird)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다가 브랜드의 중복으로 인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불여우’, 즉 파이어폭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발표됐습니다.

(다운로드: http://www.mozilla.org/products/firefox/)

새로운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
파이어폭스를 개발한 ‘모질라’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의 이름으로서, 웹 브라우저, 이메일 프로그램 등 웹과 관련된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파이어폭스의 주요 특징으로는 하나의 창에서 탭을 이용한 브라우징, 팝업창 막기, 구글 검색 통합, 효과적인 네비게이션, 자동 다운로드, 표준 준수 등입니다. IE에서는 아직 지원하고 있지 않은 많은 기능들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다양한 테마와 추가기능을 지원하고 있어서 매우 유연한 확장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0.8 버전의 등장 이후로 세계 곳곳에서는 이제 IE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왔다고 극찬하고 있고, 올해 안에 그 점유율 판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오픈 소스 프로젝트 진영의 ‘불여우’가 널리 보급되기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의 상황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거의 모든 웹사이트들이 IE를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IE가 아닌 웹브라우저로 접속할 경우 내용을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웹사이트가 많고, 심한 경우에는 IE로 접속하라는 경고문구만을 보여주는 곳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IE는 웹의 각종 규약과 표준을 정하는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http://www.w3c.org)의 표준을 무시하고 있는 ‘비표준 웹브라우저’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표준에 맞추어 만든 웹페이지를 IE에서 볼 경우 제대로 화면에 표시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결국 IE가 현재와 같은 점유율을 차지하게 된 것은 기술력의 우위라기 보다는 MS의 막강한 마케팅과 윈도우 운영체제의, 역시 독점에 가까운 보급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웹 표준에 대한 무시
대부분의 국내 상업 웹사이트들은 이러한 자본의 논리를 아무 고민 없이 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표준을 준수하여 웹사이트를 만든다면 어떤 브라우저에서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과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표준이 아니라 오직 MS 윈도우 기반의 IE일 뿐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그것 하나만을 대상으로 개발할 때 비용(사회적인 비용이 아닌 기업의 비용)도 절감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업들의 근시안적인 태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보통신 관련 정부부서의 인터넷 표준에 대한 몰이해는 그 도를 더합니다. 국가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관련 정책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기업들과 똑같은 자본의 논리만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많은 정보통신 관련 국가 프로젝트들이 지나칠 정도로 MS의 제품과 기술 위주로 결정되고 있습니다. 관료들의 전문성 부족을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땜질하고 있고, 그 전문가들 역시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윈도우뿐만 아니라 리눅스, 매킨토시 등의 다양한 컴퓨터 운영체제에서도 인터넷 뱅킹을 사용할 수 있게 개발해달라는 프리뱅크 프로젝트(http://freebank.org)가 결성되어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동감하는 사람들은 일정의 예치금(현재 약 160억 원 가량)을 약속하고 인터넷 뱅킹을 가능하게 해주는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용자들 자신의 사용편이를 위해 표준을 지키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표준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선택의 차원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접근능력(Accessibility)’에 대한 표준을 지키지 않으면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은 웹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국내 웹사이트들은 이에 대한 고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참고: Web Accessibility Initiative, http://www.w3.org/WAI/).

이렇게 표준의 문제는 시장의 논리이기도 하고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고 평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표준 제정을 둘러싸고도 많은 이익집단들의 입김과 알력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할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의견을 정확히 대변할 오피니언 리더, 전문가 집단들입니다. 그러나 표준에 관한 관심과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현실에서 모질라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번역해서 제공하고 있는 한글 모질라진(http://www.mozilla.or.kr/mozilla/zine/)과 같은 존재는 매우 소중합니다.

웹에서 자본의 논리를 변화시키는 계기
파이어폭스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오피니언 리더, 개발자 집단들의 논의에 머물러 있던 오픈 소스 프로젝트와 표준 준수에 대한 필요성을 일반 대중의 차원으로까지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길은 매우 멀고 험하겠지만 그 첫 발걸음은 자신의 웹브라우저를 파이어폭스로 바꾸고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서비스의 업체들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번 파이어폭스의 발표가 단순히 웹브라우저의 발표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웹을 만드는 시발점으로 기록되길 바랍니다. 이번 파이어폭스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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