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게임
원숭이 섬으로부터의 '어드벤쳐러스한' 탈출

김상현  
조회수: 6934 / 추천: 59
중 3때였나. 가끔씩 보던 월간 잡지 <마이컴>에서 소개했던 ‘왕을 찾아서(Search for the king)’라는 게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게임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하드볼4를 만들기 전까지 그저 시시껄렁한 3류 게임제작회사였을 뿐이었던 accolade가 만든 것이었는데, 이전까지 봐왔던 게임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내가 해본 최초의 어드벤쳐 게임
게임 내용은 ‘The King,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주인공이 엘비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시작하는데...’라는, 거창하고 진지한 탐정 게임이라기 보다는 그저 아주 코믹스러운 게임입니다. 어렵사리 게임을 구해서 아주 힘든 곳은 매뉴얼을 참고하기도 하며 영어사전을 뒤적거려 겨우 엔딩까지 갔었답니다. 게임의 진행은 단순합니다. 주인공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사물을 관찰 또는 수집하면서 엘비스의 뒤를 쫓는 것입니다.

이 게임이 바로 제가 해본 최초의 어드벤쳐 장르의 게임이었습니다. 어드벤쳐 게임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게임 속에서 ‘모험’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성장하고 높은 자유도를 갖고 있는 것에 반해, 어드벤쳐 게임에서는 정해진 주인공이 정해진 줄거리를 풀어가게 됩니다. 즉 모든 줄거리는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게이머가 그 중간 중간의 문제를 푸는 퍼즐 형식의 게임인 것이죠.

90년대, 어드벤쳐 게임, 루카스아츠...
루카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물론 스타워즈겠지요? 자연스럽게, 루카스 필름의 게임관련 계열사라면 보통은 스타워즈 재탕 게임정도나 만드는 어설픈 곳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실제로 그 회사는 스타워즈 재탕게임을 만들고 있기도 하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게임들은 상당히 어설프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렇지 않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90년대를 루카스아츠(LucasArts)의 로고와 함께 폐인으로 살았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후후후...

80년 대 후반 킹스퀘스트 등 주옥같은 게임들을 만들어내며 어드벤쳐 게임을 주류로 이끈 시에라를 물리치고 자신들의 게임을 어드벤쳐 게임의 대명사격으로 자리매김 시켰던 회사가 바로 루카스아츠입니다. ‘룸’이라던가, ‘매니악 맨션’, ‘인디애나 존스의 모험’, ‘원숭이 섬의 비밀’, ‘샘 앤 맥스’, ‘그림 판당고’ 등등. 뭐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작품들입니다. 모든 게임을 다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라니깐요.

90년대는 어드벤쳐 게임의 황금기와도 같았습니다. 루카스아츠 뿐만 아니라 많은 게임사에서 앞다투어 어드벤쳐 게임을 내었고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죠. 루카스아츠에서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처럼 밝고 기발한 어드벤쳐 게임이 있었던가 하면 ‘어둠 속에 나홀로’라던가 ‘가브리엘 나이트’와 같은 공포 어드벤쳐들도 히트작 이었고요. 하지만 90년대 말 ‘툼레이더’를 기점으로 하는 액션 어드벤쳐 장르가 그 자리를 빼앗아 버리면서 정통 어드벤쳐 게임은 그 명맥이 희미해지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98년도에 루카스아츠는 ‘그림 판당고’라는 그 당시의 기술력을 훨씬 뛰어넘는 3D 기반의 정통 어드벤쳐 게임을 발표하게 되는데, 게임 비평가들의 엄청난 찬사에도 쫄딱 망해버립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루카스아츠의 게임까지 실패를 겪는 것을 목격한 대부분의 개발사들은 어드벤쳐 게임에 미련을 버리고 흔해빠진 게임들(^^;;)이나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해봐야 맛을 아는 ‘원숭이 섬의 비밀’
서론이 좀 길어졌네요. 어쨌든, 98년도에 한번의 실패를 경험한 루카스아츠는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2001년 다시 어드벤쳐 게임을 발매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원숭이 섬의 비밀’의 4번째 에피소드인 ‘원숭이 섬으로부터의 탈출(Escape from Monkey Island : 이하 EFMI)’입니다.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는 어드벤쳐 게임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그래픽이나, 넘치는 위트 그리고 짜임새 있게 전개되는 스토리와 퍼즐들은 어드벤쳐 게임의 교과서라고도 볼 수 있죠. 이 점은 EFMI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3D로 개발된다는 소문이 돌던 당시, 원숭이 섬 시리즈 특유의 화면이나 게임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3년 전 시대를 뛰어넘는 엔진이었던 ‘그림 판당고’의 3D 그래픽엔진을 기반으로 한 이 게임은 유머러스한 대사들과 함께 아름다운 캐러비아 해를 3D로 잘 구현해 내며 전편들의 게임성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번 편은 우리의 주인공 ‘얼빠진 해적’ 가이브러쉬가 말리 섬의 총독인 일레인과의 꿈같은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말리 섬에 돌아와보니 일레인은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고 총독 사저는 캐터펄트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호주인 ‘오지 맨드릴’과 ‘찰스’로 변장해 총독 선거에 나선 ‘리척’이 결탁하여 캐러비안 해의 해적들을 모조리 소탕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이 음모를 막기 위해 ‘궁극의 모욕(Ultimate Insult)’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라는 것이 이 게임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오스틴 파워스’스러운 게임을 저렇게 정리하고 보니 나름대로 거창하기도 하군요. 가이브러쉬와 일레인과 리척이 어떤 관계인지를 모르신다면, 흑흑... 지면 관계상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원숭이 섬의 비밀 1, 2’를 받아서 게임을 직접 해보세요.



뒷이야기...
1. http://www.abandongames.com/ 에 가시면 원숭이 섬의 비밀 1,2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곳에는 그 외에도 주옥같은 고전 게임들이 많이 있답니다.
2. 더이상 대작 게임이 나오지 않아 몇년 전에 끝내고 장롱 속에 쳐박아 놨던 게임을 다시 꺼내서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라던가, 얼마전까지 개발중이었던 루카스아츠의 풀쓰로틀의 차기버젼의 개발 중단 소식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어드벤쳐 장르에서는 안좋은 소식만 연일 들리고 있습니다. 어드벤쳐 게임의 중흥은 언제나 도래할 것인가~~
3. 듄과 Command & Conquer 시리즈를 만들었던 웨스트우드(Westwood) 스튜디오는 원래는 “키란디아의 전설” 이라는 멋진 어드벤쳐 게임 시리즈를 만들었던 회사였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었던 회사라 나중에 다시 자세히 소개를 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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