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만화뒤집기
가장 암울한 미래, <총몽>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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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미래가 아름답기만 하리라 생각했다. 좌파에서도 우파에서도. 무슨 근거로들 그랬을까?

논리적으로만 따져도 상당히 수상하다. 수탈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이, 수탈당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식민지 인민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이 온다면, 제국주의 통치배들은 아무래도 손해를 보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미래는 더 이상 반짝이는 장밋빛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예술은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암울하면 암울할수록 작품성을 인정받는, 디스토피아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어두운 미래 사회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일본 만화에 디스토피아 붐이 분 것은,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럴 듯하다. 만화의 세계에서, 미래는 점점 더 암울해졌다.

안 그래도 어두운 미래 세계는, 다가올 종말에 불안해하며, 자신들만의 묵시록을 쓰고 있었다. 더욱 더 불길한 멸망을 위해, SF는 다른 장르를 불러들였다. ‘외세’를 끌어들인 셈이다. 초능력자가 등장하기도 하고(아키라), 마계의 침입자가 나타나기도 하며(사일런트 뫼비우스), 아예 정체불명의 ‘사도’가 찾아오기도 한다(에반겔리온). 그러나 진정한 암울함을 위해, 굳이 초자연적 존재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총몽>의 미래 역시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 암울함이 극에 달할 수 있었던 것은, 설득력 있는 치밀한 데생 덕분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총몽>에 설정된 세계관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서 인간이 발명해놓은 가장 잔인하고 비참한 장치인 ‘계급지배’를 이용한다.

땅에는 고철마을이 있고, 케이블로 연결된 먼 하늘 위에는 공중도시 자렘이 있다. 고철마을의 주민들은 비천하고, 자렘(Salem)의 주민들은 고귀하다. 고철마을로부터의 ‘밀입국자’들은 자렘의 문턱에서 사지가 절단되고 결국 다시 땅으로 떨어져 죽는다. <총몽>의 슬픈 세계에는, 자렘 시민권을 얻어 주겠다며 거액의 돈을 갈취하는 사기꾼이 있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같은 고철마을의 사람들을 습격하는 범죄자가 있으며, 그 범죄자를 다시 살해하는 현상금 사냥꾼이 있다.

디스토피아의 암울함은, 오늘날의 어두운 부분에서 따오는 것이 보통이다. <총몽>은 계급지배의 야만적인 현실을 미래에 대입한다. <총몽>의 암울함이야말로 디스토피아 만화 가운데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갈수록 격투만화의 색채가 짙어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암울한 미래의 계급사회. 머나먼 미래조차도 계급지배가 유지된다는 것, 그러한 비관적인 전망이야말로 어쩌면 정말 암울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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