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정책제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사회적 함축

김동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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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찰청은 ‘DNA활용 미아찾기 사업’의 본격적 추진 의사를 발표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면 경찰청은 앞으로 1년 이내에 전국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무연고 아동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미아 실종자 가족들의 유전자와 대조하여 미아를 찾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신원을 확인할 목적으로 국가 기관에 의한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 시도가 이번에 처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일부 복지단체들을 중심으로 DNA를 이용해서 미아 찾기 사업을 하겠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그밖에 검찰과 경찰도 제각기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의 구축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경찰청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계획은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는 유전자 DB 구축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사업방향의 구체화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큰 맥락에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갖는 사회적 함의를 살펴보고, 그 토대 위에서 몇가지 정책적 방향을 제안하기로 하겠다.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주장의 세가지 가정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다.
첫째, 그 목적이 미아찾기든 미래의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한 것이든 간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와 분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주장 각각을 살펴보자.

첫 번째, 즉 DB의 효용성에 대한 가정은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가정에 해당한다. 오늘날 유전자는 이미 큰 사회적 권력을 획득하고 있다. 따라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경우, 그것은 경찰, 법정, 보험, 기업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제도들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될 우려가 있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적인(dominant)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유전정보는 정말 그렇게 신뢰가능한 것인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유전자 감식 과정에서 오류가 빚어지거나 친자 식별 과정에 실수가 빚어져서 법정 소송으로 비화된 사례 등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사회 제도들이 그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경우, 그런 실수를 보완하거나 바로잡기가 무척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윤리 문제의 기술적 해결(technological fix)이 가능하다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과학주의적 가정이다. 이 가정은 데이터베이스란 가능한 한 커지고 다른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를 이루어야만 효용성이 높아진다는 기술적 속성 자체로 인해 크게 위협당한다. 또한 대규모 DB가 구축되는 사회에는 위계적인 정책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상식에 비추어서도, 기술적 해결은 윤리적 문제를 존중하기보다는 비켜가려는(by-pass) 경향을 나타낼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사회적 맥락의 문제이다. 과학윤리의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전정보 이용의 사회적, 윤리적, 법률적 함축(ELSI)을 놓고 숱한 사회적 논쟁을 거쳤고 그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법률적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사회적 학습을 통해 시민들이 높은 수준의 윤리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말에야 간신히 구색만 갖춘 생명윤리와 안전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켰고, 주요 조항의 시행은 다음 해까지 유보해 놓은 상태이다. 사실상 우리는 윤리와 사회적 문제에 관한 한 거의 무방비 상태이다.

몇가지 제언
사실 그외에도 지적해야 할 점은 많다. 특히 우리의 국가기관들이 매번 미아찾기라는 명분을 내걸고 유전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추진하는 행정 편의적 접근방식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과 여러 차례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발생한 미아의 문제는 우리 민족 전체의 집단 상흔(傷痕)이며, 그 누구도 미아를 찾아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반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난 2001년 ‘유전정보 이용에 관한 시민배심원 정책권고안’에서 시민 배심원들이 유전정보를 이용한 미아 찾기의 대의명분을 인정하면서도 이 정책이 미아 찾기 사업에서 최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명한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아를 찾기 위한 개별적 사례에서 유전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아를 찾기 위한 그밖의 사회적 노력의 일환으로 사례에 따라 적절한 판단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유전자 데이터 베이스 구축은 유전정보 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유전정보의 사회적 이용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의 소개와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론화 작업이 요구된다. 지난 2001년 통과된 ‘과학기술기본법’ 상에 명기된 ‘합의회의’, ‘기술영향평가(TA)’와 같은 시민참여 사업을 통해서 유전정보 활용의 사회, 윤리적 문제, 유전정보 DB 구축의 타당성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생명윤리와 안전에 관한 기본법의 시행령에 법률적 규율로서 유전정보 이용과 연관된 구체적인 조항을 통해 향후 조치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다.

셋째, 사회적 합의와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유전정보 이용의 사회적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가령,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정부출연 연구소들의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포함한 공익적 연구’를 위한 연구소 설립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와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는 무엇이지 비켜가거나 모면할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존중이 가능한 사회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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