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메신저
벅스뮤직과 MP3의 자본주의적 담론. 그 이전에…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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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아는 분에게 드럼을 배운 적이 있다. 당시 레슨비는 프로 뮤지션에게 개인 과외를 받는 것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었지만 나에겐 무지 큰 액수였다. 그 분 말씀인즉, 돈을 내지 않으면 서로 소홀해지고 느슨해진다는 것이었다. 정말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 열심히 하게 된다는 말일까? 마치 매 맞기 싫어서 시험 잘 보는 것처럼?

지금은 집안의 반대로 음악을 잠시 접어둔 상태이지만, 그 이후로도 음악을 듣는 건 곧 생활이었다. 잠을 자는 시간만 빼고 항상 음악을 들었다. 집에 들어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것이었고, 이동 중일 때도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이 생겨서 카세트테이프를 사러가는 것이 아주 즐거웠던 일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물론 돈은 많지 않은데 듣고 싶은 음악이 너무 많아 문제이긴 했지만.

MP3의 등장으로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기 시작했다. 돈을 들이지 않아도 인터넷을 조금 뒤져보면 원하는 곡을 찾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듣던 음악들이 그리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서 찾는데 좀 노력을 들여야 했지만, 그래도 공짜라니 그 정도 수고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귀찮아져 버렸다. 그 정도 수고도 아까워져 버린 건 저장해 놓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만 되면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벅스뮤직은) 역시 공짜다.

그 후로 음반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MP3 파일도 모으지 않았다. 아니, 실은 있는 것들 마저 지워버리고(유료화 될 줄 알았나 뭐) 클릭 몇 번에 쉽게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헌데, 이상한 점이 있다. 음악의 소리 자체에 예전만큼 신경을 못 쓰는 것 같다. 음악을 듣기 위해 행해야하는 수고와 절차가 줄어들수록 음악은 점점 더 가벼워져서 듣는 둥 마는 둥 되고 그럴수록 다시 음악에 대한 욕구불만은 커지는 느낌. 왜 그럴까?

내 세대에는 거의 없어진 LP 레코드판. LP 수집을 하는 한 음악 애호가에게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음악을 너무 쉽게 듣는 것 같아. 예전엔 음악을 한 번 들으려면 커다란 LP판을 가져와서 턴테이블에 올리고 어느 곡을 들을 건지 바늘도 놔줘야 되고, 또 정기적으로 판을 닦으면서 관리도 해줘야 했는데. 그러다 다음 면을 들으려면 판도 뒤집어 줘야 하고...”

음반의 양이나 종류로 따지면 음악을 처음 들을 때보다 지금 훨씬 많이 듣는데, 질로 따지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음악이라는 것이 마치 배경음악 정도가 되었다고 하면 표현이 되려나. 확실히 그런 면에선 어렵게 얻은 것이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유료 스트리밍 사이트에 가입해서 돈 내고 듣는다면 좀 나아지는 걸까? 지금쯤 ‘따뜻한 인터넷 연구기관’이나 ‘아날로그 인터넷 연구랩’ 같은 것이 있다면 즐거운 소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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