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인터넷트렌드
인터넷 세상은 지금 이렇다
세 가지 사례를 통해 들여다보기

최호찬  
조회수: 2631 / 추천: 50
최근 인터넷에서 생긴 몇 가지 일들을 소개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외국의 일들이긴 한데 국내 소식들은 워낙 다양한 매체에서 잘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에 제가 써야 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합니다. 아래에 쓰는 일, 두 개는 사람에 대한 것이고, 하나는 조직에 대한 것입니다. 셋 모두 부러운 존재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부러워할만한 존재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아무리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 글을 보탤 겁니다.

1. 노암 촘스키, 블로그를 시작하다
뛰어난 언어학자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양심 세력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씨가 자신의 블로그 'Turning the Tide (http://blog.zmag.org/ttt/)'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말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라는 의미의 이 블로그는 이전부터 있어왔던 ZNet (http://www.zmag.org/) 이라는 진보적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촘스키 씨의 다양한 온라인 활동의 연장선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이제 사람들이 블로그를 낮은 비용과 효율적인 온라인 출판 및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하나의 분명한 신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지식인들의 블로그가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김규항 씨 (http://gyuhang.net), 문화평론가 서동진 씨 (http://www.homopop.org)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지식인들이 대중과 빠르고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블로그를 이용해 온라인에 과감히 나온다는 것은, 이 분들이 이미 온라인상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대중과의 대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진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영영 이 거대한 대화에 동참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2. 로렌스 레식, 자신의 책을 내어놓다
로렌스 레식 (Lawrence Lessig, http://www.lessig.org)은 현재 미국 스탠포드 법과대학원 교수이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 http://creativecommons.org)'라는 비영리 단체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매우 저명한 법률 사상가입니다. '창의적인 평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단체는 현재 첫 번째 프로젝트로, 디지털 시대의 지적재산권의 한계를 보완하고 창작물의 자유로우면서도 합법적인 교류와 공유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렌스 레식은 얼마 전 출간한 자신의 책 의 PDF 버전을 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의 조건에 따라 인터넷 상에 무료로 공개하였습니다.
(http://www.free-culture.cc/freecontent)

그 공개 조건은 ‘인용 시 출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것과 ‘상업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단 두 가지입니다. 이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다양한 디지털 포맷을 만들어 배포할 뿐만 아니라, 책을 장 별로 나누어서 각자 자신의 육성으로 녹음한 다음 공개하는, 하나의 자발적인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지식인들은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3. MSR 소셜 컴퓨팅 심포지엄 2004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뭘 해도 욕을 먹습니다. 빌 게이츠가 엄청난 돈을 사회에 기부해도 별로 빛이 나거나 칭찬을 듣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원죄가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의 사업전략에서 어떤 음모가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들에게도 칭찬할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소인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MSR, http://research.microsoft.com)’의 정책과 활동입니다.

MSR은 ‘열린 연구 조직’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들의 연구 과정, 결과들을 외부에 발표하고 공유할 뿐만 아니라 많은 프로젝트들이 외부와의 협동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소셜 컴퓨팅 심포지엄 2004’를 보면 형식적이 아닌, 꽤 중요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ttp://www.hyperorg.com/blogger/mtarchive/002559.html)

이 심포지엄은 매우 소규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전문가들의 높은 지명도와 요즘 한창 유행중인 소셜 소프트웨어(<네트워커> 2004년 2월호 참고) 덕분에 많은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MSR이라는 조직 자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개방성과 지식공유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뜻밖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진 논의들이 이후에 어떤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때 얼마나 큰 토양이 되어줄지를 생각해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인터넷이나 IT 분야에 한정해서 볼 때, 국내 기업 중에 이렇게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연구결과와 지식들을 공유하고 있는 곳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업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논의의 기회와 공간 자체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것은 자신감 부족이거나 자신의 것을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무한 경쟁 때문에 자신 외의 모든 것은 경쟁자,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안 바다 건너에서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은 언제까지나 그들이 만드는 서비스를 그대로 쓰거나 흉내 내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비참한 생각이 듭니다. “나누면 커진다”라는 말은 이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