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사이버
‘여성의 정치세력화, 단 한번의 ‘선택’을 넘어서’

조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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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의 탄핵 정국을 기점으로 하여, 4월 15일에 있을 총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음을 절실히 느낀다. 정치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냉소적이었던 사람들마저도 펄펄 끓어오르게 한 그 분노 속에는 이참에 무엇인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들이 분명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탄핵 관련 의원 명단이나 특정 정당에 대한 비난의 어조들을 접하다보면, 사람들에게 어떤 판단 기준이 생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기준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리고 나의 표를 어느 쪽에 던짐으로써 그 변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표명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도 조금씩 다를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나는 이제까지의 한국사회에서 유권자들의 표가 자신의 계급적 배경 및 정치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한 표’로써 제대로 행사되어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여성의 정치참여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성장하기를 바라는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사실 대통령 탄핵 사건 직후의 분노를 가라앉힌 후 이전보다 더 복잡한 심정을 갖게 되었다. 탄핵 사건으로 인해 생겨난 어떤 종류의 기준선(?)속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위치해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탄핵 과정에 대한 비판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탄핵에 찬성한 모 여성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비롯한 여러 게시판에서 예의 그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들로 호되게 된서리를 맞고 있다. 그리고 어떤 여성의원들은 탄핵에 찬성했건 반대했건 ‘전직 대통령의 딸’, ‘독립운동가의 딸’ 등 여전히 누구누구의 딸로 불리며 이번 상황과 관련지어진다.

이 와중에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후보 소개 페이지를 클릭하면, 이번 총선 출마가 확정된 여성 후보들의 면면이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뜬다. 그들은 참 나란히도 모여있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은 가슴이 답답하다. 여성은 그저 ‘여성’이라는 이름만으로 묶이면 되는 건가. 누구의 의견을 대변하는가에 대한 계급적 지향, 여성으로서의 자기 경험에 바탕을 둔 실천적 의식 등은 어떻게 변별력을 가질 수 있나.

나는 이제 ‘여성이 정치를 하면 더 깨끗하다’라는 말에 고개를 마냥 끄덕일 수는 없는데, 그 속에서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시기상조일까? 그리고 한 표를 행사할 사람들 역시 여성후보를 바라봄에 있어 ‘누구누구의 딸’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복합적인 기준을 가질 수 있길 바라는 것 역시 시기상조일까?

‘선택’이라는 것이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택했을 때 다른 하나를 혹은 그 이상을 버려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독점적인 ‘하나’로 시작되었다가 ‘둘’이 되며 차이가 드러나고 ‘셋’으로 늘어나면서 긴장과 균형이 생겨나는 그런 단선적인 과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의해 복합적으로 변화해 나가는 세포분열 과정과 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 한번의 선택으로 이 모든 상황이 결판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몇 명의 여성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는가’로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끝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에게는 여성 정치인들의 복잡한 ‘차이’에 대해서 말해야 할 수많은 날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여성 유권자들의 ‘차이’에 관해서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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