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북마크
정기간행물을 소개하라고?
<문화/과학> 2003 겨울호, 통권 36호, 문화과학사

윤현식  
조회수: 3589 / 추천: 47
이번 호에는 어떤 책을 읽고 소개를 해볼까 생각하는 중에 진보네트워크의 상근자로부터 한 권의 책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그 책은 단행본이 아니고 계간지였다. 단행본을 읽고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그나마 편한 면이 있다. 내용이 일관되게 진행되기 때문에 한 가지 논점에 대해 충분한 이해만 하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정기간행물은 여러 내용을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어서 각 글마다 주제가 다르고 시각의 차이가 판이한 경우가 많다. 더구나 단행본은 그 책 한 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정기간행물은 각각의 주제를 다 이야기해야 하는지, 하나만 콕 찍어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또한 정기간행물은 시의성이라는 면을 지니고 있어 가장 최근호를 소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저 부여한다. 이래저래 말 풀어나가기가 여간 곤욕이 아니다. 허나 어찌하랴, 소개받은 값은 해야 되는 것을.

계간 <문화/과학>은 ‘과학적 태도로 문화연구에 임하자는 지향’으로써, ‘과학적 문화론’을 이야기하는 <문화/과학>은 ‘과학적 체계를 갖춘 문화연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문화와 과학 사이에 ‘/’ 부호를 사용한다. 이 부호는 문화와 과학의 지속적인 ‘절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절합의 형태는 변증법적 형태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발간되는 <문화/과학>이 내놓은 ‘2003년 겨울호’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쟁점들”이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잡았다.

<문화/과학> ‘2003년 겨울호’의 편집은 특집, 연구논문, 기획, 문화분석, 문화정책, 쟁점, 논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집에서 눈길을 끈 주제는 히라카와 히데유키(平川秀幸)의 「과학·기술과 공공공간 - 기술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의 정치를 위한 각서」이다. 히라카와 히데유키는 하버마스와 아렌트의 이론을 대비하며 공공공간이 합의 형성의 장인 동시에 구성원간 항쟁의 장으로 기능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공공공간 안에서 과학기술은, 비록 논의과정에 합의의 형태를 가질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폐쇄회로의 작동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폐쇄성에 대하여 필자는, 테크노크라시를 정당화하는 배타적 경계구축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이에 저항하는, 공공공간의 개방을 위한 저항의 정치를 조직화할 방안을 모색한다. 공공공간에서 논의의 장이 닫혀버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의 협소화와 탈정치화에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필자는 전문가 및 정책입안자 집단이 진정으로 공중이 회의하는 부분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 이들에 대응하는 집단 역시 전문가집단에 상응하는 지적능력을 다양하게 구축할 것, ‘행위에 대한 책임’과 ‘타자에 대한 책임’을 통해 공공공간을 활성화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이 글 다음으로는 바로 헌법학자인 한상희의 「정보화와 인권, 그리고 헌법」이라는 논문이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정보기본권을 위한 투쟁이 ‘입법투쟁’이라기보다는 ‘해석투쟁’이라고 주장한다. 즉,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보기본권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정보기본권 담론’을 합리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정보기본권의 목록’들을 유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다양성과 역동성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하는 일종의 국가의무조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목록의 고정화작업이 오히려 정보문화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이다.

이 외에도 <문화/과학>’2003년 겨울호’는 현실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한 글들이 다수 눈에 띈다. 부안 핵쓰레기장 문제, 파병문제, 신자유주의와 문화와의 관계 등 어느 하나 놓치기 힘든 주제들이 이야기되고 있다. <문화/과학>은 계간지의 형태이지만 각 권마다 자기 색깔을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 지난 호를 구입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나저나 이 책 소개시켜준 사람에게 부탁이 있다. 앞으로 정기간행물 소개는 사양한다.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그리고 정기간행물 소개시켜주려면 지면을 늘려주던가. 아무리 서평이 맛보기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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