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만화뒤집기
만화 <병렬연결>

김태권  
조회수: 3759 / 추천: 52
며칠 전 만화를 사랑하는 한 선배가 재미있는 만화를 보내주었다. 제목은 <병렬연결>. 제목만 들어도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인터넷으로 받아서 열어보았는데, 과연 재미있었다. ‘한 놈을 묶으나 여러 놈을 묶으나 밝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안 죽고 오래 유지된다’는 구절은, 부르주아 정치판의 현실을 잘도 꼬집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밤에, 그 만화를 그린 대학생이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 필자가 그 만화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하더라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 불온한 만화를 ‘찬양고무’하고 있지 않은가! 무릇 목하 대한민국에서 가장 서슬 퍼런 법령이 바로 이 선거법이거늘, 어찌 일개 서생이 그 엄정한 규칙을 위반할 수 있으랴. 전직 대통령과 그 잔당들의 정치자금법 위반도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잡아넣지 못하고, 20만 명이 집회를 해도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 하기야 자기 한계를 드러냈건, 민중을 배신했건, 민주당을 배신했건 아무튼 대통령이란 한 고위 공무원이 탄핵 먹은 것 역시, 이 잘난 선거법을 위반한 까닭 아니던가.

예술의 역사에서 회화며 건축이며 조각은 윗분의 거룩한 용안을 찬양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 천박한 자들은 지배자의 그 번질거리는 낯짝을 조롱하기 위해 만화를 채택했다. 여기에 사진의 발달은 또 하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예술의 유리장 안으로 달아나 버린 회화를 부르주아 계급에게 떼어주고, 하르트만은 투쟁을 위해 사진 몽타주를 택했다. 반세기가 지난 후, 욕심은 많지만 예술에는 무식한 부르주아 속물들은 결국 회화를 쇠퇴시켰고 결국 이번에는 뻔뻔하게도 사진을 가져가고 있다. 그리하여 이른바 예술 사진이 점점 더 부르주아 예술을 지향하는 오늘날, 사진 몽타주는 만화의 어법과 결합하여 빈정거림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패러디 이미지는 권위를 해체하는 놀라운 무기이다. 제작과 복제가 쉽다는 점 역시 그 잠재력을 증폭시킨다.

아직은 만화의 영역에서 우리는 부르주아와 싸울 수 있다. “만화 따위만 보지말고 고급예술 좀 감상해라”라고 혼날 때마다, 필자는 만화의 가능성에 대해 환호한다! 인터넷에서도, 만화에서도 저들은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루소는 대의제의 한계를 꼬집으며, “영국국민은 선거기간에만 주인이 되고 나머지 기간에는 노예이다”라고 빈정댔다. 다른 기간에도 노예인 한국국민은, 선거기간에는 더욱 질곡 받는 노예가 된다. 머지않아 우리 노예들이 참는 것에도 한계가 올 것이다. 그 때 만화는 또 다른 무기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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