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정책제언
디지털 미디어 환경으로의 급속한 변화와 공공성 강화

조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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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V는 뭘로 살까? 요새 한참 나오는 그 머냐... 디지털 TV로 살까?
B : 야, 근데 얼마 전에 TV 보니까, 디지털 무슨 방식이 바뀐다고, 디지털 TV 살 때 조심해야 된다더라.
A : 그게 무슨 소리야?
B : 몰라, 머 2010년인가부터 디지털 TV로만 TV 볼 수 있다던데, 거기에서 무슨 방식 가지고 많이 싸우나봐.
C : 뭐? 그럼 그때 되면 일반 TV로는 TV 방송 못 보는 거야?
B : 그렇다더라고.
C :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그때 되면 멀쩡한 TV를 버리고 새로 사야 된다는 거야?
B : 응...
C : 말도 안 돼. 그런 X같은 경우가 어딨어?

위에서 든 사례는 얼마 전에 필자가 겪은 일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필자만의 특수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지털 TV(DTV)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TV가 도대체 어떤 것이고, 기존의 지상파 TV가 디지털화 되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변화하고, 이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인 영향 - 단적으로 말해 2010년에는 멀쩡한 아날로그 TV를 버리고 강제로(!) 디지털 TV를 사야한다는 것 등 - 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항들이 공유되지 못한 채, 그저 고화질로 대변되는 미국식 전송방식과 이동수신으로 대변되는 유럽식의 이전투구 정도로 비춰지는 것이 한국의 DTV의 현실이다. 비단 DTV 뿐만 아니라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등의 신규 미디어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다르지 않다. 전반적인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환에 있어서 방송의 수용자이기도 한 일반 민중들에게는 정보가 거의 공유되고 있지 못하고 일부 정부기관과 몇몇 거대기업세력들 만이 참여하는 가운데에 철저하게 밀실의 장막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누구도 못말리는 식으로 진행되는 동안에 방송 미디어의 공공성은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실제로 위성 DMB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법적으로 인정해주기 위해 지난 3월 22일 통과한 방송법 개정에서는 위성 DMB라는 ‘신규 방송사업’에 한해 신규사업의 인큐베이팅이라는 명목으로 ‘공공채널설치 의무조항’이 제외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경제논리에 의해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것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환경에서 공공성 강화는 필수

그러나 이런 식의 경제논리만으로 방송의 공공성을 재단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변화가 미디어 지형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장 특기할 만한 변화는 디지털 미디어 테크놀러지의 발전으로 미디어에 대한 기술적 장벽이 낮아져 일반인들도 손쉽게, 어느 정도 수준의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참여 민주주의 시민 의식의 발전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알려내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가진 주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까지 ‘수동적인 시청자’로 남아있던 일반 민중들을 자신의 의견을 미디어를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와 충분한 능력을 지닌 ‘적극적인 미디어 활동인’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러한 ‘미디어 활동인’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미디어를 통해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 즉 공공적 미디어 참여 구조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공공적 방송 미디어 구조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반 시민, 특히 미디어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외계층 대상의 미디어 교육 및 제작 지원
- 지역 미디어센터와 같은 지역의 공공적 미디어 거점
-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방송을 통해 자유롭게 알릴 수 있는 액세스 방송 구조
- 개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미디어를 통해 공공, 교육, 지역적 커뮤니티의 소통을 확장시키기 위한 커뮤니티 미디어 구조
- 소외계층 사람들이 손쉽게 방송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콘텐츠 및 어플리케이션
- 이러한 공공적 방송 미디어 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펀딩구조

방송미디어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제언

이러한 공공적 미디어 구조의 필요성에도 현재 DTV나 DMB 등의 디지털 미디어는 경제논리 - 그것도 실효성이 심히 의심되는 - 에 따라 주도되고 있다. 이에 대해 디지털 방송미디어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안들을 요구해야 한다.

첫째, 지상파 TV 방송의 디지털 전환으로 늘어나는 대역폭에 대해 현재로서는 그대로 기존의 지상파 TV 사업자에게 주어지기로 되어 있다. KBS, MBC 등 기존 지상파 사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약 4배나 늘어나는 주파수 자원을 얻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늘어나는 대역폭을 다양한 공공적 채널 또는 여러 가지 공공적 데이터 서비스 등의 공공적 방송구조 확보에 할당해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재 디지털 TV의 전송표준 변경과 밀접하게 관련해서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상파 TV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기존의 지상파 TV 방송이 사용하던 VHF 채널 대역의 재편 시에 공공적 미디어 구조를 위한 대역폭을 별도로 편성해야 한다.
셋째, DTV로의 전환이나 위성 및 지상파 DMB등 신규 미디어에 대해 방송 사업자, 설비 사업자, 중계 사업자 등 모든 미디어 관련 사업자들이 얻는 수익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걷어서 공공적 미디어 구조를 위한 펀딩을 조성해야 한다.

넷째, 방송과 통신의 융합, 그리고 그 속에서의 거대 통신기업들의 방송 침투와 독점현상에 대한 방비책을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한 논의와 정보를 열어놓고,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는 다각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서 디지털 미디어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시기가 이미 한참 늦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특히 DTV에 대해 어떠한 논의도 없이 변경시한인 2010년까지 어물쩍 넘어가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으며, 이는 다른 디지털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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