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김명철
이공계 기피 현상의 이해

김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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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해져서 17대 총선에서도 중요한 정책 공약으로 다루어지기도 하고, 비례대표 앞 번호에 이공계 출신들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공계 기피 현상도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원인을 알면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련만 ‘과학기술 중심사회’니 ‘이공계 공무원 특채’ 같은 미봉책만 난무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 이공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내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공계 기피는 대학 입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실제로 고등학교의 경우 문·이과 비율이 7대3 정도라고 하고, 대학 입시에서의 문·이과 비율이 4대6 이니 전체 30%의 학생 중에서 60%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하위권 대학의 경우 문과 출신 학생이 이공계에 진학하는 교차지원을 안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미적분이나 행렬, 벡터 등의 이과 수학을 안 배운 학생들을 받아서 대학에서 고등학교 이과 수학을 다시 가르쳐야 하는 후행교육(?)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가르치는 컴퓨터 과학 과목에서도 수식이 자주 나오는데, 수식만 나오면 학생들의 시선이 초점이 흐려지면서 다른 곳을 향하고 만다. 일례로 이차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알고리즘 문제를 시험에 냈더니, 근의 공식을 몰라 못 푼 학생들도 있었다. 소위 ‘이해찬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현 고등학생들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한 가지가 다양하지를 못하고 쉽고 재미있는 쪽으로 몰린 것이 이공계 기피 현상의 큰 이유가 된 것이다.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책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나’에서, 일본 고등교육 정책의 실패를 도쿄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 문부성의 대학 입시 정책이 쉬운 쪽으로 치우쳐 일본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다닌다는 도쿄대조차 기본 실력도 갖추지 못한 대학생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며, 이는 향후 일본이 글로벌 세계에서 뒤쳐지게 될 것이라고 진단을 함으로써 많은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는 한국의 교육 상황과 너무 닮아있어 남의 나라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타산지석을 삼아야 할 문제로 보인다. 또 이공계 기피 현상의 다른 한 축인 성적 상위 그룹에서의 기피 현상은 직업적 안정성 때문에 의대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공계를 졸업하더라도 청년실업이 심각한 수준이고, 어렵게 취업을 해도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니 해서 신분이 불안하니, 이는 마치 정년이 없는 의사를 적성과 관계없이 선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몇 년 전에 포항공대 전체 수석과 차석 입학자에게 미국의 유명 이공계 대학 연수 기회를 제공했는데, 이 학생들이 연수 다녀와서 모두 학교를 그만두었단다. 이유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과학기술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수능을 다시 봐서 의대에 가기 위해서라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 중소기업의 평범한 이공계 주임 연구원인 ‘다나카 고이치’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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