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장애없는
개인별 신분등록제와 장애인

김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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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국회의 파행으로 ‘호주제 폐지’가 17대 국회로 넘어왔다. 호주제 폐지의 뜻을 더하기 위해서는 폐지 이후 신분등록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빠르게 결정하여 시행해야 할 것이다. 거론되는 대안은 ‘가족별 호적편제’와 ‘개인별 신분등록제’이다.

장애인계는 호주제 폐지에 대하여 여성장애인단체 외에는 찬반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장애인에게 있어서 호주제 폐지에 따른 대안은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되어야 한다. 호주제 폐지의 목적은 호적제도가 안고 있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억압적 상황을 타파하는데 있다. ‘가족별 호적편제’ 또한 결혼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상정하여서 역시 가족중심의 또 다른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파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한 부부와 미성년 자녀로 구성된 가족 이외에도 한부모 가족, 재혼에 의한 가족, 미혼모 가족, 동성애자 가족, 일인 가족, 동거 가족 등의 다양한 가족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서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과의 관계가 중요한 노인, 아동, 장애인 등이다. 그런데 그 가족이 가장 큰 조력자일 수도 있지만 반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는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거대한 장벽이 되기도 한다.

어느 여성은 10여 년 전에 사고로 척추에 손상을 입어 목 아래 기능이 마비되는 장애인이 되었다. 잘만 관리하면 평생을 살 수 있는 상당한 보상금을 받았고 체계화된 사회복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이를 통해 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상금은 고스란히 가족의 손에 넘어가서 형제ㆍ자매의 교육이나 혼수 비용으로 쓰이고 그녀는 가족의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 전화 한 통 제대로 못하고 방안에 누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러한 비슷한 예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노인, 아동에게도 있다. 이는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하여 접한 이야기들이다.

사회보장이 필요한 구성원이 있는 가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미약한 환경에서 많은 장애인이 가족이라는 혈연관계가 오히려 가장 깊은 애증의 골이 될 것을 염려하고 있고, 실제로 가족에 의해 장애가 더욱 문제시되어 자기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은 성인이 되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가족을 떠나 독립하여 살기를 바란다. 그 방편으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과 모여서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동거 가족의 형태로 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실현하는 것이다.
가족별 호적편제는 사회적 장애를 만들어서 여전히 ‘이성과 결혼한’ 사람과 ‘혈연과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구별하는 차별을 조장하여,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국가 운영은 장애인의 모든 생활영역에서의 자립생활을 오히려 저해할 것이다.

호주제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문제점을 정확하고 면밀하게 짚어내어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은 당연하다. 가족별 호적편제는 언젠가는 현재의 호주제가 지적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좀더 정확하고 면밀하게 멀리 내다 볼 일이다. 무수한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효과적인 국가의 역할을 피부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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