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인터넷트렌드
웹의 기억력 높이기
집단지성은 가능한가?

최호찬  
조회수: 2390 / 추천: 51
웹은 흔히 쌍방향 미디어라는 수식어로 칭송받곤 합니다. 하지만 웹의 기반인 하이퍼링크는 한 방향만을 가리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링크된 웹 페이지는 자신을 링크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링크를 통한 상호 커뮤니케이션과 피드백이 불가능하다는 한계, 그리고 그것은 웹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남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드넓은 인터넷 공간에 모든 페이지들이 외롭고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모습만이 상상될 뿐입니다.

웹의 한계

웹의 이런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하려는 계획은 예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웹 서비스(Web Services), 시맨틱 웹(Semantic Web) 등에 대한 논의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기술들은 웹 상의 데이터 처리 과정의 모든 부분에 사람이 일일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컴퓨터 간에 직간접적으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데이터 간에 좀 더 잘 정의된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입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매우 기술적인 것이고 제 능력 밖의 범주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이 기술들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과 현재의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집단지성으로 가는 길

인터넷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자주 논의되는 개념은 바로 전세계 인류의 통일된 지성,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 피에르 레비 교수가 주창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나 연결된 정신(Connected Mind)과 같은 개념들입니다.

이 개념들은 인류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서로 연결되어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지식들이 인류의 진화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 개념은 웹의 발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유용한 것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인터넷의 현단계는 집단지성의 차원으로 올라서기에는 많은 보완과 발전이 필요합니다. 웹은 우선 단기적, 단편적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기억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 기억력의 향상을 기반으로 해야만 지식의 단계, 지성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많은 서비스들은 바로 그 기억력의 관점으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우선 검색엔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검색엔진은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분류하고 기억하여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불러내옵니다. 얼마나 더 정확하고 빨리, 많이 불러내올 수 있느냐는 그 검색엔진의 성능과도 직결됩니다. 마치 사람의 기억력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검색엔진, 트랙백, 그리고 기억의 연결

전세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검색엔진 구글(http://www.google.com)은 이 검색엔진의 기본조건 외에 구글만의 독특한 기술인 페이지랭크(PageRank)라는 것을 개발하였습니다. 이것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찾는 페이지가 다른 페이지들에 의해 얼마나 많이 링크되어 있느냐에 따라 검색 결과의 순위가 결정되는 식입니다. 한 방향만을 가리킬 수 있는 하이퍼링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모든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몇 가지의 단서만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남긴 기억을 빌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 구글을 이용하여 정보를 찾다 보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웹의 기억력은 블로그에 의해서도 증진되고 있습니다. 블로그의 등장 이전에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매우 제한적인 사람들만이 자신의 콘텐츠를 웹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결과물은 폐쇄적인 커뮤니티, 게시판, 수시로 변하는 임시 홈페이지 등과 같이 웹에 지속적으로 남거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기술적인 장애물을 거의 없애고 웹이 기억하기 쉬운 구조와 양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웹은 기술과는 무관한 일반인들에게도 콘텐츠 생산, 즉 인류의 풍부한 기억 남기기에 일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게 된 것입니다. 그 기억이 오늘 점심에 먹은 라면 이야기든, 자기 애완견의 재롱 이야기든 말입니다. 우리의 뇌도 반드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만 골라서 기억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리고 블로그의 주목 받는 특징 중 하나인 트랙백(TrackBack)은 역시 단방향 링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철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영희의 블로그의 어떤 글을 링크했을 경우에 영희에게 자신이 링크했음을 알려주는 기능입니다. 이것의 용도는 단순히 페이지를 참조했음을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글에 대한 부가 정보, 비평, 논쟁 등을 연결시킴으로써 다양한 변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블로그 뿐만 아니라 이후 다양한 서비스들에서 채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웹의 기억력이 좋아진 이후에는?

마샬 맥루한의 제자인 데릭 드 커코브 교수와 같은 이는 웹이 우리에게 새로운 정신상태를 제공하고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기술낙관론자의 희망에 찬 주장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웹이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웹의 기억력이 좋아질수록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역시 선택의 문제는 다시 우리의 손에 들려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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