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게임
이제는 사라져 버린 온라인 게임의 전설, ‘웨스트우드사’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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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란디아 왕국의 광대였던 말콤은 왕과 왕비를 살해하고 왕좌를 탈취한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왕자 ‘브랜든’은 충복에 의해 안전히 탈출했다. 그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왕자 브랜든은 청년이 되었다. 한편, 브랜든이 살아 있다는 정보를 접한 말콤은 브랜든을 없애려고 한다. 브랜든의 할아버지는 말콤의 이런 계략에 말려 돌이 되어버리고... 브랜든은 부모님의 원수인 말콤에게 복수를 하고 돌이 된 할아버지를 되살리기 위해 숱한 위험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모험을 해야 한다... <키란디아의 전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듄>

80년대 중반, 당시 20대였던 혈기 왕성한 젊은이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자신들의 게임을 만들기 위한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리차드 게리엇 만큼의 천재성은 없었던 것일까요? 몇 년의 세월동안 다른 회사의 개발을 외주로 작업하던 이들은 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이름이 붙은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그 게임이 바로 <듄>입니다. <듄>은 웨스트우드가 직접 제작한 첫 번째 게임이자 첫 번째 어드벤처 게임이었습니다.

<듄>은 소리 소문 없이 묻혀져 버린 게임입니다. 그 실패의 주된 원인은 어려운 게임진행 방식과 난해한 스토리 구조였습니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을 뿐, 저도 실제로는 해본 적이 없네요). 하지만 그들은 게임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듄>의 실패를 기반으로 결국 92년도에 이들은 PC게임의 역사에 있어서 영원히 빛날 기념비적인 작품을 그것도 두 개씩이나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 둘 중 하나는 물론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듄2>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어드벤쳐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키란디아의 전설>입니다.

성공으로 시작해서 완벽한 실패로

<키란디아의 전설>은 주옥같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던 90년대 초반의 어드벤처 게임의 황금기에도 단연 인기를 끌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게임에 비해 2-3년은 앞서는 아름다운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효과로 처리된 화면들은 그 탄탄한 스토리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죠. 대부분의 웨스트우드가 만들었던 게임들이 그러하듯 이 게임의 배경음악과 음향효과는 다른 게임이 따라올 수 없었을 만큼 완벽했습니다.

이 게임의 후속편인 <키란디아의 전설 2: 운명의 손>은 전편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이전의 불편했던 인터페이스를 개선했으며, 또한 1편과 연관되면서도 그 자체로써도 독립성을 가지는 완벽한 스토리로 호평을 받습니다.

웨스트우드 스튜디오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회사였습니다. 어드벤쳐, RPG, 전략 게임 등 어느 것 할 것 없이 히트의 연속이었지요. 그런데 95년을 기점으로 얄궂은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95년 웨스트우드는 블리자드 사의 워크래프트를 의식해서 만든 와 <키란디아의 전설3>를 발표합니다. 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한 반면, <키란디아의 전설3>은 완벽한 실패작으로 평가받아 버렸지요. 1편에서 적으로 나왔던 말콤이 주인공인 게임이었는데, 사실 왕과 왕비를 말콤이 죽이지 않았으며 그 누명을 벗기 위해 모험을 한다는 전작의 완성도까지 떨어뜨리는 억지스러운 스토리, 미국식 토크쇼 방식으로 진행되는 엉성한 게임구성 등 게이머들에게 많은 야유를 받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구성으로 가득 했습니다. 그들이 이 작품에서 창조적으로 시도한 거라고는 게임의 ‘3D’화였는데 이것도 오히려 전작의 아름다운 화면들을 망가뜨리는 수준이었다고나 할까요.

사라져 버린 명성

어드벤쳐 게임에서 실패를 맛본 그들은, 지난 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RPG인 <지혜의 땅> 후속 작품에서도 비슷한 실패를 겪게 됩니다(물론 이후 <녹스>라는 RPG가 호평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그 라이벌인 블리자드가 만든 디아블로의 성공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거라곤 밖에 없었던 것이죠.

결국 98년도 -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오랜 개발기간을 거쳐 세상에 공개됐던 해죠 - 에 당시 명품 게임 개발사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던 EA(일렉트로닉 아츠)사에 합병되고, 를 제외한 게임에는 거의 손을 떼게 됩니다.

웨스트우드가 EA와 합병한 후에는 다시 예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게 되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EA의 기업 논리에 맞춘 개발은 여러 창조적인 게임 제작자들의 숨통을 조였고 결국 그들은 웨스트우드를 포기하고 다른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블리자드 사의 영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실적 면에서 항상 웨스트우드와 이를 인수한 EA의 골치를 아프게 한 장본인이었으니까요)
2003년 초 EA의 결정에 따라 웨스트우드의 폐쇄가 결정되고, 웨스트우드의 개발계획은 EA 내의 스튜디오로 이관되면서 의 마지막 버젼인 은 웨스트우드가 아닌 EA의 작품이 되어버립니다.

“아아, 웨스트우드여! 이제 당신들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이름은 영원할지어다.”



뒷이야기...

1. “키란디아의 전설”은 동서게임채널에 의해 한글화되어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검색을 통해 쉽게 한글판을 구해서 해보실 수 있습니다. 검색창에 “키란디아의 전설”만 쳐보세요.

2. 명품족 EA의 수집품은 웨스트우드 외에도, “파퓰러스”의 피터 몰리뉴가 있던 “불프로그”, “울티마”의 아버지 리차드 게리엇이 세운 “오리진”(피터 몰리뉴와 리차드 게리엇은 시드 마이어와 함께 세계 3대 게임 제작자로 손꼽히는 사람들입니다), 심시티, 심즈를 만든 윌 라이트의 “맥시스” 등 정말 화려합니다. 하지만, 이들 중 불프로그와 오리진은 폐쇄가 결정되었으며 리차드 게리엇과 피터 몰리뉴는 그 전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다른 공간들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EA는 스튜디오의 인적 자원들을 사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사는데는 실패한 셈이죠. 윌 라이트 정도가 EA에 아직 남아있기는 한데, 만약에 심즈가 실패했었더라면(!?), 맥시스까지도 사라졌을테니 정말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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