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Cyber
게임아이템의 경제적 가치는 누구의 것일까

조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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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시절, 창원에서 검찰실무 수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낯설기만 하던 피의자신문이 익숙해 질 무렵, 매우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배당받게 되었다. 피의자는 근처의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 게임 ‘뮤’를 하는데 보내고 있었다. 그는 피해자로부터 ‘뮤’ 게임의 아이템을 50만원에 사겠다고 약속하고서 게임 상에서 아이템을 전달받은 다음 약속한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된 것이었다.

당시는 ‘리니지’ 게임 상에서 게임아이템을 잃게 되자 친구들과 함께 폭력을 행사하여 잃은 아이템을 되찾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온라인 게임과 관련한 범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었던 때였다. 개인적으로는 법률가로서 사이버공간에서의 법률문제를 처음으로 접한 때였으므로, 이 사건에 대해서 꽤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 학생이 혐의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여 사건은 쉽게 마무리됐지만 말이다.

게임아이템 경제적 가치 인정

만일 위 학생이 아이템을 팔기로 하고 먼저 돈을 받은 다음 아이템을 주지 않은 경우라면, 이는 돈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그러나 과연 아이템을 전달 받은 다음 약속한 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 어떤 범죄를 구성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먼저 게임아이템에 경제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게임아이템 등은 중개 사이트 등을 통하여 현실적으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으므로 게임이용자들에게는 경제적 가치가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위 학생의 행위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피해자를 속여 취득하였으므로 사기죄에 해당하게 된다. 법원도 위 ‘리니지’ 게임 사례에서 가해자에게 공갈죄를 인정하여 게임아이템에 대하여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

한편, ‘뮤’ 게임의 이용약관상 이용자는 게임의 아이템 등을 현금으로 거래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게임 이용자가 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한 것이 적발되면 그 이용자는 게임이용을 제한당할 수 있고, 운영자는 이용고객이 현금거래로 획득한 아이템 등을 회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므로, 결국 현금으로 아이템을 거래한 행위가 문제가 되는 경우, 게임회사에 의하여 게임아이템을 회수당할 수 있다. 위 학생의 경우도 아이템을 모두 회수 당하였고 아이템은 원래 주인에게 반환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기망행위에 의하여 취득한 이상, 게임회사와의 계약에 의하여 아이템을 곧 회수 당한다 하더라도 사기죄의 성립에는 지장이 없다.

게임아이템은 게임제작회사의 저작물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는 어떨까? 온라인 게임 내의 자유게시판에 아이템거래에 관련된 글을 올렸다가 게임회사에 의해 글이 삭제되고, 캐릭터가 영구 압류되는 조치를 당한 사람이 수년간 게임을 해서 얻은 아이템 등에 대하여 이를 부당하게 압류 당함으로써 그 동안의 계정 사용비, 게임방비, 투자한 시간 등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고 주장하면서, 게임회사에 대하여 재산상의 손해배상 및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게임상의 아이템은 어디까지나 게임 제작회사의 저작물로써 게임회사의 소유이고 게임의 이용자는 이용약관에 의해 이용허락을 받았을 뿐이므로, 게임 이용자가 계약상의 이용약관을 위반한 경우 게임회사가 약관에 의하여 게임 이용자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게임아이템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이를 재산상의 이익으로 보느냐, 재물로 보느냐에 따라서 적용되는 법조문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ID를 무단으로 이용하여 게임에 들어가 그의 의사에 반하여 아이템 등을 옮겨가는 행위가 어떠한 범죄를 구성할까? 이러한 행위는 ‘사람에 대한 기망’이 없어 단순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아이템을 재물로 보는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아이템을 훔쳐가는 행위는 절도죄가 성립할 수 있다. 아이템을 재산상 이익이라고 보는 경우,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 중 재물의 경우에만 성립하는 절도죄는 성립할 수 없고, 결국 이러한 행위는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에 해당하게 된다. 즉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의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 변경하여 정보처리를 하게 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위 ‘리니지’ 판례에서 법원은 아이템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기는 했으나 아이템의 성격이 재물인지 재산상 이익인지는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이용자에게 아이템의 소유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회사에 대한 이용권이라는 채권적인 권리가 있을 뿐이라고 이해한다면, 아이템의 성격은 재산상의 이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온라인 게임문화에 대한 개선 시급

인터넷상의 게임사기 등 사이버 범죄로 벌금이상의 형을 받아 전과자로 전락한 10대 청소년이 지난 한해 동안에만 무려 1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하루 평균 28명의 10대들이 사이버공간에서의 범죄가 발각돼 경찰에 검거된 셈이다. 게다가 이런 게임아이템 관련 사이버범죄는 대부분 게임중독 상태에서 저지르고, 가상공간의 물건을 훔쳐내는 것이어서 범행이 적발된 뒤에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맡은 사건의 학생 경우는 초범인데다가 피해 액수가 그다지 크지 않고, 피해자가 합의해 주었기 때문에 기소유예 처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한 범죄임을 감안할 때, 다수의 청소년 범죄가 양산될 수 있는 우리의 온라인 게임 문화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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