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2호 http://
먹이사슬

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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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달 안산에서는 말 그대로 믿지 못할 ‘황당한 일’이 있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변호사 사무실을 비롯한 법원 근처의 사무실들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유리문은 안으로 잠겨있고 셔터는 내려졌다. 평소라면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의뢰인들로 북적거릴 시간인데 어디에서도 사람구경이 힘들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확히 일주일 후에는 똑같은 현상이 수원법원 근처에서도 일어났다. 법원 앞 건물들이 모두 닫혀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전염병이라도 돌았나.

사건은 다름 아닌 정보통신부의 소프트웨어 단속 때문이었다. 정통부 직원이 떴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법조타운의 사무실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잠적을 한 것이다. 덕분에 신이 난 건 소프트웨어 생산업체와 판매업체들 뿐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운영체제를 팔았고, 그나마 일부 프로그램은 동이나서 구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 변호사 사무실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단지 정통부 직원이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에 나섰다는 입소문 하나에 운영체제 판매업체는 난데없는 호황을 누렸고, 그 대가로 미국에 사는 주인은 돈을 벌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거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불법 소프트웨어를 단속하라고 엄포를 놓았고, 그 때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국내 업체들 단속하고 나섰다. 급기야 작년에는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상시적인 단속을 벌이기 위해 정통부 직원에게 불법소프트웨어를 단속할 수 있는 수사권까지 부여해 버렸다.

결국 미국의 소프트웨어 생산업체는 미국 정부를 누르고,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를 누르고, 한국정부는 한국의 업체나 국민을 누르는 압력의 사슬이 존재하고, 그 사슬 덕분에 요즘과 같은 극심한 불황에도 미국의 소프트웨어 생산 업체는 김선달처럼 한국의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압력의 사슬이 여기에서 멈춰 있다는 것이다. 양육강식이 판치는 밀림이라도 먹이사슬은 순환하는 법인데, 도대체 한국의 국민이 다시 미국을 압박하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압력의 사슬을 끊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 일은 당연히 우리 정부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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