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2호 만화뒤집기
남자와 남자, 우익과 조폭
<멋진 남자 김태랑>

김태권  
조회수: 2883 / 추천: 52
막대한 상금을 내건 일본의 초호화 종합격투기 시합. 경기에 앞서 프로모터는 링 중앙에 올라 참가 선수들의 이름을 낱낱이 크게 부른다. “아무개여- 왔는가!”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선수들은 대답한다. “여기 있다!” 프로모터는 비장한 표정으로 외친다. “좋다! 아무개여! 너는 ‘남자 중의 남자’다!”

남자다움은 장사가 된다. 남자다움이라는 실체도 없는 말에 털 난 가슴에 설레는 뭇 남성들이, 기꺼이 바지춤을 뒤져 돈을 낼 것이다. 그래서 <멋진 남자 김태랑>이라는 플롯도 없는 만화가 꾸준히도 나올 수 있었나 보다.

마초 만화. 대리만족이니 욕망이니 하는 개념이 이렇게 잘 확인되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눈썹 짙고 뭉툭한 코에 거대한 턱과 굵직한 목을 가졌다. 유흥업소에 가지 않고서야 남자다움을 과시하기도 어려운 샐러리맨의 생활이건만, 여성들은 용케도 그를 알아보고 앞 다투어 몸과 마음을 바친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그녀들의 문제는, 몸매도 얼굴도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는 것.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다. 이 장르가 원래 그렇지 않던가. 마초 만화의 히로인들은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여성’이니까. 개성은 없고 성(性)만 중요하다.

그렇다. 따지면 안 된다. 그것은 남자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남자답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의 빗장을 열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피범벅이 되어야 하고, 고함을 치고, 주먹질도 잘 해야 한다(물론 이 모든 장면에는 펜으로 거칠게 넣은 효과선이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감동의 라스트 신에 이르러, 주인공은 일본 수상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김태랑은 건설회사의 ‘근로자’들을 선동한다. “지금 일본 건설업계의 노동시장은 너무 경직되어 있다. 좀더 유연화되어야 한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우리 모두를 비정규직으로 써달라! 비정규직을 확대하라!” 고용 안정이라는 구시대의 법규에 매달려 있던 공무원들이 도전정신을 결여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하는 와중에, 김태랑의 피어린 절규를 들으며 남자 중의 남자, 일본의 총리대신이 감동한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도 그렇다(지난 대선 때, 토론회를 거부하는 상대후보에게 “남자답지 못하다”고 한 후보 진영에서 공식논평한 일도 어차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필자나 당신이 남자답지 못해서 그러는 거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남자 중의 남자’들은 모두 이해하신다. 재벌과 정치인, 그리고 우익과 결탁한 조폭, 조폭과 결탁한 우익. 주인공의 친구들은 모두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다. 이분들의 면면을 보며 필자는 웃을까 울까 망설인다. 그들이 이룬 자본과 정권과 폭력의 (그리고 남성성의) 그 견고한 한통속 앞에서 한계를 느끼고 좌절해야 하나? 아니면 분리수거의 번거로움이 없다는 점에 우리는 쾌재를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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