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호 김칠준의
CCTV에 소름 돋는 사람들이 되어야...

김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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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CCTV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서울 강남경찰서가 강남구청과 함께 CCTV 5대를 시범운영하더니,, 올 연말까지 45억원을 들여서 320여곳에 확대 설치할 계획을 강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전역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한쪽에서는 범죄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프라이버시보다 우선한다고 하면서 절대지지를 표명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급기야 이 논쟁은 국가인권위원회에 넘겨졌다.

CCTV설치 찬성론의 근거는 명확하다.
첫째, 범죄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가장 강력한 근거로 삼는다. 실제로 강남 지역에서 시범운영 하는 기간 중 살인, 강도, 강간 등 5대 범죄가 작년에 비해 42%나 줄었다고 한다. 경찰관계자는 CCTV 1대가 10명의 경찰관보다도 낫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둘째, 공공장소에서 CCTV를 통해서 보는 것 자체만으로 프라이버시의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곳곳에 초소를 설치해서 경찰관이 지켜보는 것이나 CCTV를 설치해서 한곳에서 집중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촬영된 결과물을 다른 목적으로 유통할 때 비로소 프라이버시의 침해문제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설사 프라이버시 침해라 하더라도 범죄로부터 시민의 생명?신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CCTV가 설치됨으로 인해 침해받는다는 프라이버시가 무엇인지 따져보면, 그것은 후미진 골목에서 의심스런 행위를 하는 자의 프라이버시일 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는 것이다.
넷째, 강남주민의 83.4%가 CCTV의 설치를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빈번하게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할 강남 주민들이 찬성하는데 그거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섯째, 인권 선진국이라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거리마다 CCTV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한국에서 CCTV설치를 못할 게 뭐냐고 묻는다.

그러나 CCTV설치 반대론은 논리적으로 찬성론을 압도한다 .
우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촬영 당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CCTV설치는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라 촬영하고 그 결과를 보관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CCTV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여야 하고,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CCTV 설치지역의 범죄발생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사회 범죄의 총량이 준 것이 아니며 주변지역으로 이전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범죄 예방의 효과 역시 우발적인 범죄가 줄었을 뿐, 계획적인 범죄는 CCTV를 피해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경찰관들의 직접적인 범죄예방활동이 감소함으로써 치안의 사각지대에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CCTV의 설치와 유지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을 범죄발생의 원인을 해소하거나 다른 보안시설과 경찰인력을 충원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인권을 침해받는 사람은 CCTV가 설치된 지역의 주민만이 아니라 CCTV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기 때문에, 본인의 동의가 없는 한 다수의 주민이 찬성한다고 해서 CCTV에 의한 인권침해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미국의 경우에 대해서도 적어도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범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긴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공중에게 고지를 한 후 설치하고 있으며, 설치 후에도 사후통제에 관한 세부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와는 분명 다르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CCTV설치는 단순히 프라이버시침해의 문제만이 아니고, 감시 통제사회로 가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기 때문에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을 바라보면서 적어도 강남구청이나 서울시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CCTV를 설치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일단 안심이 된다.

그럼에도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CCTV 설치가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강행하지는 못하겠지만, 결국은 법적인 근거와 절차를 만들고, 그 안에 촬영된 자료에 대한 접근권과 비밀을 보호하는 내용의 사후통제장치를 마련한 후, CCTV를 설치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CCTV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가 논쟁의 핵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는 CCTV앞에서 소름 돋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그 동안 논쟁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자기정보통제권의 보호에 초점을 맞춰져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고, 자신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인권침해의 정도에 있어서는 그 심각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들의 멱살을 붙잡고 왜 그렇게 감수성이 무디냐고 외쳐봤자 쉽사리 먹히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관점에서는 범죄로부터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에 밀리거나 양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 논쟁의 또 하나의 핵심인 감시사회의 문제에 파고들 수밖에 없다.
CCTV는 그 자체가 감시통제사회로 향한 가장 기초적인 시스템이고, 이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국가기관은 무한하게 시민들의 일상을 통제 조종하는 장치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먼 훗날의 일이라고 치더라도,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기관이 CCTV를 설치함으로써 감시, 통제를 통한 문제해결에 중독되어 버리고, 시민들조차도 문제의식과 저항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훗날 도시와 농촌 곳곳에 고성능 CCTV가 빼곡이 들어차고, 이 모든 것이 중앙집중화 된 컴퓨터시스템에 의해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는 사회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국가권력이 욕망과 통제사회에 대한 공포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그것이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고통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심각성을 공유하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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