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3호 정책제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경쟁정책

이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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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경제학 관련 학회에서 ‘소프트웨어산업의 육성을 위한 정책방향 -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개최했었다. 평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부정책에 관심이 많았고, 발표자들의 구성으로 볼 때 찬반양론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어 오픈소스소프트웨어 정책에 관한 일종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어려운 시간을 내어 참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쉬움만 남는 자리였다. 진정한 토론이란 일정 공통부분을 공감하면서 서로의 다른 생각을 주장하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세미나에서는 각자가 이해하고 있는 일정부분을 전체로 확대하고, 이러한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그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상의 제약 때문에 방청석에 대한 발언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미나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해 보고자 했었던 부분을 지면을 통해 제기하고자 한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시장 개입

프랑스, 독일 등 각국 정부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특히 리눅스를 비롯하여 ‘GPL(General Public License)’ 라이선스를 가진 프로그램들을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바이러스’에 비유했었다. 또한 이러한 바이러스의 유포를 돕는 정부정책을 비판하면서 소프트웨어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적재산권제도의 확립, 불법복제단속 등을 통해 정부는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 시장에 개입해 왔다. 소프트웨어는 경제학상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의 특징을 가지는 공공재로서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기 쉬운데, 이를 막기 위해 지적재산권제도 등 다양한 법제도적 장치가 구축됐다. 법제도를 통한 국가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거대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용자의 ‘불법’ 복제행위 및 이의 단속을 위한 사회적 비용 또한 적지 않았다.

소프트웨어시장은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이론적으로 독점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반영하듯 현실에서도 PC OS(Operating System)에서의 마이크로소프트, DBMS(Data Base Management System)에서의 오라클,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에서의 SAP 등 분야별로 독과점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혹자는 소프트웨어의 기술혁신이 빠르다는 점을 들어 ‘잠재적 경쟁’을 주장하나, 현실에 있어서는 여전히 독점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을 뿐인데, 주된 이유는 진입장벽 때문이다. IBM이 OS/2를 내세워 마이크로소프트에 도전하였으나 ‘응용프로그램장벽’에 막혀 실패한 사례는 이를 잘 말해준다.

진입장벽 완화와 상호운영성 확보

독점에 의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 및 네트워크 효과 등 진입장벽을 완화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규모의 경제와 관련하여, 소프트웨어는 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엇비슷한 기능을 가진 부분을 중복하여 개발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낭비이다. 많은 프로그램들의 공통기반이 되는 부분에 대한 소스코드가 공개되고 이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소프트웨어시장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춤으로써 새로운 기업들의 참여를 통해 소프트웨어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한편 네트워크효과에 의한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상호운영성이 확보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흔히들 공개표준(Open Standard)이 중요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적 표준도 상호호환성을 위해 공개될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미국 법무부와 EU 위원회가 마이크로소프트로 하여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에 관한 정보, PC~서버 및 서버~서버의 통신프로토콜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개표준과 오픈소스소프트웨어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호호환성의 측면에서 볼 때 최고의 공개표준은 소스코드가 공개된 경우라고 본다. 그렇다고 필자가 모든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강제로 공개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호호환성이 요구되는 부분이 존재하고 그에 상응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있을 때 보다 많은 기업들이 이를 잘 활용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인 효과/비용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공개소프트웨어 생태계’

마이크로소프트에게서 힌트를 얻은 것이긴 하지만, 필자는 평소 ‘공개소프트웨어 생태계’라는 말을 좋아한다. 일정지역에서 생물과 주변 환경이 상호 의존 관계를 유지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는 ‘생태계’의 의미 속에는 인간에 의한 섣부른 개입을 반대한다는 의미와 함께, 혹시 잘못된 방향의 개입이 있었다면 이를 중지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정책들 중, 특히 소프트웨어 특허제도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으며, 나아가 저작권제도 또한 ‘문화’의 향유라는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적용된 것이므로, 생태계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인센티브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BSD(Berkely Software Distribution)’, ‘GPL(General Public License)’, ‘LGPL(Lesser General Public License)’, ‘MPL(Mozilla Public License)’ 등 오픈소스소프트웨어와 함께 배포되고 있는 다양한 라이선스들은 여기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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