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4호 미디어의난
민중의 목소리, 풀뿌리 방송국을 세우자!
‘소출력FM 라디오’에서 지역공동체 라디오방송 정책으로

홍교훈  
조회수: 4439 / 추천: 57
우연히 미니FM 시험방송 허가안내문을 인터넷에서 발견한 후, 들뜬 마음으로 4명이 모였다. “이거 재미있겠지. 라디오방송이니까, 송신기술도 간단할 거고 많은 장비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한번 해 보자!” 우리의 ‘공동체라디오방송국 세우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들뜬 마음으로 모인 4명은 1와트 이하(방송 범위: 반경 1∼2㎞)의 소출력 라디오 방송에서 풀뿌리 방송국 건설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것을 활용해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을 함께 세울 사람들을 찾아 다녔지만 그때마다 부딪히는 문제가 있었다. 1와트 출력과 공동체라디오방송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었다.

방송위와 정통부, 소출력FM방송 활성화 합의

그러나 최근에는 공동체라디오방송의 의미를 알고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작년 지역공동체 라디오방송운동에 대한 토론회와 지난 4월 세계공동체라디오방송연합(AMARC) 의장인 스티브 버클리(Steve Buckley)를 초청한 국제 토론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 6월 9일에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제5차 방송통신정책협의회에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있는 소출력 FM방송 활성화를 위해 가용 주파수 등 기술적 사항과 신청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함께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전시회장이나 경기장 등 공공시설에서 라디오를 이용해 쉽고 편리하게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합의한 소출력 FM라디오 방송은 미니FM방송으로, 공동체라디오방송과는 거리가 있다. 국내 방송허가 및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소출력 FM라디오 방송을 전파 출력의 기술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안은 공동체라디오방송국 건설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미 소출력 FM라디오 방송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소출력’이라는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 사회문화적인 다양한 의미와 필요성에 의해 공동체(Community)라디오방송 정책과 법제가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디오방송, 대안미디어이며 시민미디어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시민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주 관리 매체로서 대안미디어이며 시민미디어이다. 지역공동체 중심의 정보, 현안, 이슈가 소통될 수 있는 지역사회 라디오방송으로 지방자치제 시대에 지역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미디어인 것이다. 또한 장애인, 여성, 노동자, 노인, 어린이 및 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보장될 수 있는 풀뿌리 미디어로 기존 방송과는 다른 제3의 방송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상업과 공영(국영)방송 체제 중심에서 독립 미디어라는 새로운 구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동안 국가와 기업의 전유물처럼 배정돼 왔던 FM주파수를 확보해 내고 우리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공동체라디오 방송국 건설은 쉽다. 소규모 송신 장비와 간단한 녹음장비만을 가지고도 방송국 설립과 운영이 가능하다. 라디오는 생활매체로서 대중의 접근이 일상화돼 있고 전화, 엽서, 인터넷 등의 라디오방송 참여가 익숙하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있어서 라디오 매체의 진입장벽은 TV와 인터넷 등의 다른 매체에 비해 낮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풀뿌리 민중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써 라디오는 활용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중라디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원주민 라디오, 영국의 다양한 계층 라디오방송, 미국의 진보적 라디오방송 등 다양한 형식의 세계 공동체 라디오는 거대 주류 미디어에서 소외되고 배제돼 왔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확장해 주고 있다.

공동체라디오 방송국 건설 위해 고민해야 할 것

그렇다면, 공동체라디오 방송국 건설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첫째, 누가 설립의 주체가 될 것인가. 공동체라디오 방송은 비상업적 방송으로 운영돼야 할 것이며, 지역공동체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이슈를 제시하고 있는 단위가 설립의 주체가 돼야 한다. 즉,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여야 한다.

둘째,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인가. 공동체라디오 방송은 지역사회와 밀착된 공론장의 역할을 할 것이며, 미디어에서 주변화된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다. 따라서 방송국이 위치한 동네 주민들과 공동체라디오방송 성격에 따른 다양한 계층이다.

셋째, 누가 운영할 것인가. 공동체라디오방송 운영에는 설립주체, 청취자,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의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 크게 다양한 주체간의 연대를 통한 공동운영과 독자운영 모델이 있는데,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운영구조는 공동체 의견이 자유롭게 반영될 수 있도록 열려져 있어야 한다.

넷째, 그렇다면 어떤 모델의 방송국 건설이 가능한가. 공동체라디오방송은 크게 지역밀착형과 계층형으로 구분된다. 기존의 주류미디어가 상업과 공영방송 형태로 구분되고 운영된다면 공동체라디오방송은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한 방송인가에 따라 지역사회 중심의 공동체라디오와 특정계층 중심의 공동체라디오방송 모델로 구분될 수 있다.

다섯째, 방송 범위는 어느 정도인가. 지역밀착형과 계층형 방송의 범위는 방송의 방향과 그 필요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정해질 필요가 있다. 최소 공동체 형성을 위해 방송범위는 확보돼야 할 것이며 미니FM방송의 1와트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여섯째, 누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가.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의무적으로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은 지역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미디어교육과 장비를 지원해야 한다.

공동체라디오 방송국 건설 반드시 이뤄내야

이와 같이 공동체라디오방송은 기존 주류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디어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올해 방송위원회는 소출력FM 시험방송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추경예산에 시험방송 예산안을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지난 7월 28일에 소출력 FM시험방송 시행 정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실시됐다. 여전히 가용주파수 확보와 1와트 이하의 방송범위, 지속적인 지원 확보 문제, 명확한 법적 지위 획득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풀뿌리 민중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이번 소출력FM 정책과 지원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라디오방송국 건설을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