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4호 인터넷트렌드
‘명바기’를 아십니까?

최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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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홈페이지는 인기홈페이지가 됐다. 버스체계 개편 때문에 화가 난 네티즌들이 서울시에 항의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 자유게시판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네티즌들이 이명박 서울 시장을 ‘명바기’, ‘명배기’ 등 비꼬아 부르자, 서울시는 해당 단어를 ‘금지단어’로 설정하여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마치 지난 대선 당시 김민석의 철새 행보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김민새’라고 부른 것을 연상케 하는 일이다. 그렇게 금칙어를 정한다고 서울시 게시판에 쏟아지는 이명박 시장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가리 앉을 거라고 상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하다 못해 ‘?D바기’라고만 해도 금칙어는 무력화되는데 말이다.

막강 포털, ‘사이버 바리케이트’ 작동 중

하지만 일개 게시판이 아니라 막강 포털들이 금칙어를 운용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네이버의 경우, 금칙어에 해당되면 “성인전용카테고리와 성인키워드검색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성인인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라면서 성인인증을 요구한다. 야후는 아예 “이 검색어로 검색을 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화면이 떠버린다. 다음, 네이버, 야후, 엠파스, 천리안, 드림위즈, 한미르, 네이트, 신비로, 코리아닷컴, 세이클럽, 프리챌, 하나포스닷컴, MSN 등 14개 검색 사이트는 2003년 10월부터 공동으로 금칙어를 설정해 운영중이다. ‘사이버 바리케이트’가 작동하는 중이다. 실례로 故김선일씨 참수 동영상이 유포되자 사이버 바리케이트는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국내의 거의 모든 검색엔진에서 ‘김선일 참수 동영상’이라는 단어가 금칙어가 됐고, 검색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인가.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문제는 수두룩하다. 故김선일씨 참수 동영상 유포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자. 동영상이 유포된 바로 다음날인 6월 24일,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사이트들에 대한 접속차단을 지시했다. 또한 포털 사이트들에도 ‘참수 동영상, 김선일 동영상’등을 금칙어로 지정하라고 공문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동영상 유포자에 대해 강력한 형사처벌을 사법당국에 의뢰했다. 6월 25일에는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60여명으로 구성된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행정자치부와의 협의 아래 올 하반기에 사이버테러대응단 발족을 밝혔다. 원래는 일개 과에 해당하는 부서였으나 경무관을 단장으로 하는 100명 규모의 대규모 조직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문 한 장이면 사이트 접속이 차단되고 금칙어가 추가된다. 정보통신부 장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 의지는 항상 정권과 조직의 보위 논리를 쫓는다. 정부는 김선일씨가 참수되기 직전에 남긴 유언부분만을 편집한 동영상마저도 차단 목록에 슬그머니 포함시켰다. “나는 살고 싶다”며 절규하는 김선일씨의 유언은 소리없이 그저 텍스트로만 남아 버린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미디어 조작인가. 이보다 더 나을 수 있는 보도지침은 없을 것이다.

정통부와 정통윤 훌륭한 검열기관

전기통신사업법 53조가 이런 행위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음향·화상’의 통신은 금지되는 것이며, 정보통신부 장관은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그 취급을 거부·정지·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다. 2002년 2월27일에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라며 위헌판결이 난 후 개정한 것이지만, 여전히 위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사법부도 아닌 곳에서 ‘음란’, ‘명예훼손’, ‘공포’, ‘불안’이라는 추상적 단어의 내용을 확정할 수 있다는 발상이 대단히 창의적이다.

더군다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발표한 심의실적 결과를 보면, 애초 청소년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에도 ‘국가 보안법 위반 인터넷 정보’, ‘전국민중연대내 게시 정보’, ‘통일연대내 게시정보’와 같은 정치사상의 문제가 상당수다. 이런 것을 상식적으로 ‘정치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부른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그렇게 검열기관의 노릇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광대하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4분 짜리 故김선일씨 참수 동영상은 미국의 한 사이트에서 공개된 이후, P2P 프로그램을 타고 끊임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조차도 그 동영상을 찾아보았다는 경험을 공공연히 전할 정도다. 분명 정보통신부의 노력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동영상 유포를 반대하는 자발적인 행동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많은 지지를 얻었다. 실례로 당시 한국노총은 정보통신부의 조치가 파병반대 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정치적 의도이자 국민의 알 권리 침해라고 발표했지만, 이런 여론에 밀려 6월26일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동영상 유포를 동의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한다”라고 사과문을 발표해야만 했다. 애초부터 정보통신부가 공문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故김선일씨 동영상의 무자비한 유포에 분노하고 반대한다면, 그 분노는 개인의 도덕률에 대한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옳다.

‘명바기’는 ‘?D바기’로 바뀐다

금칙어는 계속 늘어만 갈 것이다. 동시에 금칙어는 지금처럼 여전히 무력화될 것이다. ‘명바기’가 ‘?D바기’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막으려해도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이버상에 쳐진 바리케이트는 그렇게 허약한 것일 뿐이다. 문제가 있는 한, 문제제기는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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