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4호 여기는
파란닷컴이 일으킨 첫 파란, 스포츠신문 독점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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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파란닷컴, 파란 일으킬 수 있을까’ 와 비슷한 뉘앙스의 기사가 많이 보였다. 하이텔과 한미르를 통합한 KTH(케이티하이텔)의 포털 파란닷컴(http://www.paran.com)이 7월 17일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한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한창 신장개업 이벤트로 분주할 것이다. 투자비용 1000억 중 200억 이상을 마케팅 비용으로 책정했다고 하니 당분간 지겹도록 파란닷컴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다.

파란닷컴 첫 화면의 상당 부분은 아마도 스포츠, 연예 기사로 채워질 듯한데, 파란닷컴의 첫 파란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기사 독점 제공 계획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KTH는 5대 스포츠지와 제휴하여 매체당 2년 간 월 1억 원씩 총 120억 원의 콘텐츠 비용을 지급하면서 사실상의 스포츠 기사 독점 체제로 가겠다는 계획이다(이는 콘텐츠 공급 대행사가 성사시킨 계약이기 때문에 실제로 스포츠신문에 돌아가는 금액은 대행수수료를 제한 월 8천만 원 수준이 될 것이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 공급되고 있는 스포츠 신문 기사의 계약기간이 빠르면 올 8월, 늦어도 연말까지는 모두 종료되기 때문에 스포츠 기사 수급을 둘러싸고 포털 사이트와 스포츠 신문간의 신경전이 계속될 전망이다. 스포츠신문 노조도 적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파란닷컴과 독점 계약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계약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금 더 복잡한 국면으로 전개될 듯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반 언론사닷컴들도 입장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콘텐츠 비용이 그동안 너무 저평가 돼 왔다는 것을 주장할 테지만 이는 핵심 콘텐츠인 뉴스를 포털에 헐값으로 팔기 시작한 그들의 잘못 또한 크다. 파란닷컴이 스포츠신문들과 기존 콘텐츠 비용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자, 일부 언론사닷컴들도 파란닷컴과의 콘텐츠 계약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파란닷컴의 결정은 물론 네이버나 다음, 야후, 엠파스, 네이트 등 기존 포털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다.

“네티즌들이여,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포츠, 연예 기사가 네이버나 다음에는 없다. 이제 파란닷컴으로 오라!”

파란닷컴은 메일, 블로그, 게임 등 기존 포털이 제공하던 각종 서비스를 고스란히 제공할 계획이지만, 한미르의 지도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딱히 경쟁력 있는 ‘대표 선수’가 없는 형편인데, 네티즌을 불러모을 만한 첫 묘안으로 내세운 게 바로 스포츠 기사 독점 제공인 셈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네티즌이 스포츠 신문을 보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방문하는가?

네티즌이 스포츠신문 기사를 좋아하리라는 근거는 분명 페이지뷰 통계에서 비롯된다. 그 잘못 꿴 단추의 순환 주기를 살펴보자. 포털 사이트가 각종 뉴스를 공급받으면 아주 소수의 속보 정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정보만을 첫 화면 혹은 섹션 첫 화면에 노출한다. ‘축구대표팀’, ‘최희섭’, ‘이승엽’ 같은 스포츠 스타 혹은 연예인들 기사는 며칠 동안 바꾸지 않고 붙박이로 노출되곤 한다. 자연스럽게 해당 기사를 많이 선택할 수밖에 없고 이 기사들은 헤드라인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많이 본 뉴스’ 라는 별도의 메뉴에 다시 한 번 노출되어 또 다시 페이지뷰는 증가한다. 포털의 미디어기능에 대한 비판은 이미 다른 지면에서 여러 번 다뤘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포털은 애초부터 미디어의 힘을 이용 혹은 악용하려고만 했지, 한번도 정상적인 미디어 기능에 대해 고민해 보려는 노력은 보여준 일이 없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속속 스포츠신문 기사들로 도배를 하니 당연히 페이지뷰가 늘어나는 것이며, 포털 사이트의 뉴스 섹션은 점점 저질 스포츠연예 무가지(無價誌)처럼 돼버렸다. 파란닷컴이 이런 부분에 주목한 건 ‘포털’ 이라는 회사의 한계다.

파란닷컴의 스포츠기사 독점 공급 결정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살펴보니, ‘돈이면 다 되는가보네’ 라는 식의 비아냥거림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무반응이었다. 구글의 새로운 메일 서비스에 그토록 열광하던 때의 네티즌과 비슷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무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를 파란닷컴이 스포츠신문 기사를 모두 독점한다고 해서 파란닷컴을 주목하거나 파란닷컴을 응원하는 네티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좀 더 편리한 메일 서비스나 커뮤니티 서비스 혹은 좀 더 흥미로운 게임 서비스 혹은 좀 더 혁신적인 검색 서비스, 또는 좀 더 정확한 디렉토리 서비스 등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없었을 리 없지만, 오픈일을 불과 며칠 앞둔 파란닷컴은 그저 스포츠연예 무가지의 종합선물세트 정도로 다가올 뿐이다.

얼마 전 만났던 모 포털 사이트의 팀장은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포털 뉴스 섹션에 대한 그간의 선정성 시비에서 벗어나 건전한 미디어로 다시 태어나야겠다며 농담반 진담반의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네이버의 경우 스포츠 기사가 빠져나간 자리에 보다 다양한 매체의 기사 정보들을 수록할 예정이라고 하니 저질 기사로 얼룩지던 포털(파란닷컴을 제외한) 뉴스 섹션이 2% 정도는 건전해질지도 모르겠다.

파란닷컴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파란’이란 알을 깨고 나오는 의미라고 하는데, 싹수를 보니 네티즌에게 몇 번은 더 깨져봐야 할 것 같다. 네티즌에게 사랑 받기 위해 내민 첫 번째 카드가 스포츠 기사 독점이라니, 파란닷컴의 첫 파란, OTL이다.

* OTL은 무릎 꿇은 사람의 옆모습, ‘좌절’이라는 의미의 네티즌 은어(예: 흑. OTL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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