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4호 만화뒤집기
리얼리즘의 승리(?)
<남쪽 손님>, 오영진, 길찾기, 2004, <빗장 열기>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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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 우리는 그것을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리얼리즘은 거울을 들고 현실을 비추기만 하면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은, 대체로 지배계급의 편의에 맞게 왜곡되어 있는 까닭이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악하는 그 자체는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상적인 세계관은, 리얼리즘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한다. <독일이데올로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던가. “어떠한 시대에도 지배적 사상은 곧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즉 사회의 물질적인 힘을 지배하는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정신적 힘도 지배한다.”

이는 우리의 손에 들려진 거울이 이미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북 사회를 향한 우리의 거울을, ‘반공의 가르침’은 20세기 내내 망가뜨려 왔다. 이북 사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이미 쉽지 않은 일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오영진 작가가 두 권으로 출판한 이번 작품 <남쪽 손님>과 <빗장 열기>(길찾기, 2004)가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 ‘테러리스트’ 등 인상적인 단편을 발표해온 오영진 작가는, 최근 이북에 다녀왔다. 한전의 직원이 되어, 경수로 건설현장에 1년 6개월을 근무한 것이다. 이북에 대한 간단한 여행기는 프랑스에서도 나온 바 있건만, 이렇게 장기간 ‘생활’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그린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한국사회의 반공교육을 ‘헤치고 나온’ 작가이다!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믿을 수 있고, 그의 감정은 참으로 공감할 수 있다.

반공의 도그마는 가르치기를, 이북은 형편없이 나쁜 사회라 했다. 이 책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북이 확실히 좋은 사회일 것인가? 이 책은 그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역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북 사회 역시 사람들이 사는 사회고, 좋은 점도 있고 짜증나는 점도 있다는 사실을 그저 ‘리얼’하게 보여줄 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리얼리즘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말이 있다. 소설가 발자크는, 정통왕당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왕당파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발자크가 리얼리즘에 충실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발자크의 세계관에 대해 그의 리얼리즘이 승리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많은 독자 여러분은 이북 사회가 아주 나쁘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독자 여러분은 이북 사회가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세계관은 현실 앞에서 패퇴할 것이다. 여러분의 세계관에 리얼리즘이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영진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승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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