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5호 사이버
기술의 남성권력화에 대해 사유하다 - 하나

권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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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바이러스 폭탄을 맞았다. 날아간 작업들 때문에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멍하니 있던 나를 보다 못해, 어머니가 A/S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조금 후 어머니는 심히 불쾌해진 얼굴로 전화기를 나한테 내밀었다. 그 직원은 집에 남자는 없는지, 없다면 젊은 여자는 없는지를 물어본 모양이었다. 성별과 나이의 이중차별 폭탄을 맞은 어머니는 평소 같으면 몇 마디 확 쏘아붙여 줄 터였지만, 당장 며칠 동안 한 작업이 날아갔다고 울상 짓는 딸의 일이 급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전화를 바꾸어준 모양이었다. A/S 직원은 전문용어도 잘 못알아 듣는 주제에 꼬치꼬치 원인을 따져대는 나에게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해주었다. 고장의 원인은 바로 “나”라고(-_-;). 이후 통화는 젊은 남자인데다가 심지어 정보통신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오빠에게로 넘어갔고, 둘의 대화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그 둘은 자신의 전문성을 확인해가며 화기애애한 통화를 했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잠시 분노를 참았던 나와 어머니는 물어봤다.

“고칠 수 있대?”
“없대요”
“도대체 왜 고장난 거래?”
“모른대”
‘%#@#$@$#@$%!!!!!’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컴퓨터 공부를 더 하고 만다. 하지만 남성지배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걸 자급자족해야한단 말인가. 대체 피곤해서 살수가 없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 문제의 원인을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서비스임에도 기술관련 서비스 제공자들은 완고하게 언어를 바꾸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기술을 권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전문가 집단은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라는 새로운 권력을 창출해내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특별한 집단으로 보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정보독점과 불통(不通)을 통해서이다. 흔히 ‘technie 문화’라고 불리는 이 기술전문가 집단문화의 특성 중 하나는 전문용어나 축약어 등을 사용하면서 자신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특정한 언어를 조작적으로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신정보기술(New Information Technologies)을 다른 사람들이 거의 알기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권력화를 위한 담론 조작을 위한 필수적인 코스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조작은 비단 정보기술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프로페셔널 집단과 지식인 집단이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어려운 말을 쓰면서 일종의 결계(結界)를 쳐놓는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신정보기술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접근도가 높고, 역사가 짧기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해볼만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 담론조작의 장벽을 넘어서 신정보기술 중에서도 최신식의 기술인 사이버 테크놀로지를 획득한 여성들은 새로운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사이버시대가 여성에게 약속했던 수많은 희망찬 전망들 중 하나인 고용창출과 기술직에서 평등한 임금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그녀들 덕분에 여성은 기계와 기술에 무지하다는 성차별적 편견이 무너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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