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5호 장애없는
신용카드 겸용인 장애인복지카드

김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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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카드의 전신은 파란 표지의 장애인 수첩이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사회보장을 받을 자격증이 되는 장애인수첩이 발부됐다. 현재는 장애인 인권운동이 가시화되고 사회보장적 급부가 많아지면서 법정장애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장애인등록을 하려고 하지만, 당시에 ‘장애인 증명서’가 싫은 장애인들은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장애인 증명서는 장애인 신분증이 되어 거부감을 갖게 한다. 국가 정책에 의해 승용차를 소유한 1-3급의 장애인은 LPG 연료를 사용할 수 있고, 연료비의 15%를 할인받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할인 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엘지카드와 제휴하여 카드 하나로 신용카드와 복지카드를 겸용할 수 있도록 했다. 카드 번호가 찍힌 전면 상단에 장애인의 사진과 주민등록번호를 실리도록 한 것이다. 연료를 충전하고 이 카드로 결재하면 고지서에 할인된 금액이 기재돼 청구된다.

신용카드에 카드번호, 사진, 주민등록번호가 그대로 실린다는 것을 상상해보자. 4년이 넘도록 가맹업소에서 카드를 내밀 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를 다 드러내는 것 같아 불편했다. 찜찜함은 충전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충전소 외의 장소에서는 자연스럽게 이 카드를 사용하지 않게 됐다. 개인의 정보인권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면서 복지카드 겸용인 엘지카드를 보니, 장애인이라는 특성 하나 때문에 불법복제가 쉽지 않겠지만 장애인복지 카드 하나로 경제권 보호는 물론 장애인을 거리로 내던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올해 4월에 ‘장애인의 정보보호욕구를 충족하고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장애인복지카드의 디자인을 바꾼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면이 아닌 후면에 인적사항을 기재하돼, 주민번호가 아닌 생년월일을 기재하고, 신용카드 사용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운전을 할 수 없어 보호자가 대신 운전을 하는 경우에는 그 보호자의 인적사항과 사진을 넣는다는 것이다.

복지카드 겸용이라도 신용카드를 내 마음대로 선택해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에는 책임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보호자의 주민번호 전부는 아니지만 인적사항과 사진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보호자라고 부끄럽고 공개 못할 일도 아니지만 장애인 당사자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 맡길테니 알아서 보호하고 부정사용하지 말라는 게다. 복지부에 전화를 걸어 ‘보호자’의 범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직계존비속 중 한 세대 구성원으로서 대신 운전을 하는 사람을 말한단다.

1급의 지체장애인이지만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나로 인해 부모가 신용카드에 얼굴과 생년월일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직접 운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그 보호자에게 정말 미안하다.

굳이 신용카드를 장애인증명서로 만들지 않고 신용카드의 분류번호로서 처리가 가능하지는 않을까? 누군가 공무원들이 하나의 권력층이 되어 도무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집단이 됐다고 한 적이 있다. 나날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인권보호가 중요해지는 시기에 도무지 발상의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는 것일까. 당장 해결안이 없더라도 기본원칙은 개인의 보호에 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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