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5호 칼럼
반 인권적 주민등록번호의 폐기를 소망한다

케이  
조회수: 3076 / 추천: 55
현재 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 폐지를 위한 만인 집단 진정서를 모으는 과정이 한창이다. 이번 진정은 지문날인반대연대, 정보인권활동가모임,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가 주관하여, 주민등록번호의 반 인권성에 대해 집단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자 하는 적극적 움직임의 하나다. 이런 흐름에 우선 개인적으로 환호하며 나아가 보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행동에 동참하길 바란다. 정보 주체가 자신의 개인 정보를 온전하게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때가 올 때까지 말이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나이, 생일, 성별, 출생 지역 정보 등을 통해 모조리 드러내고 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주민등록번호는 나이주의, 지역주의, 성차별주의 등의 차별을 조장하고 재생산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통념들과 정확히 맞물려, 그런 통념들을 강화하고 각종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이 주민등록번호가 쓰이는 곳이 좀 많은가. 관공서에서 업무를 볼 때,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 시험을 치르기 위해 원서를 쓸 때, 입사 지원서를 쓸 때, 그리고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다른 여러 순간에, 너무나 일상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낯선 이들에게 공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뒤 번호 첫째자리가 2인, 여자임이 드러나 차별 받고, 동등한 지위에 있음에도 나이가 어리다고 차별 받고, 나이 많은 여자라서 취업 못하고, 한국 국적이 없어 주민등록번호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한다. 물론 내가 열거한 차별 사례들은 주민등록번호만으로 발생하는 것들은 분명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위와 같은 차별 사례들은 성별, 나이 등이 차별의 매개로 작동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성별을 생물학적 특성에만 근거하여 국가가 임의로 출생시부터 규정하여 남자가 앞 번호 여자가 뒤 번호라는 것부터가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듯,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서운 것이 주민등록번호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일괄 감시 및 통제를 통한 국민 프라이버시권 침해, 국민 내부의 성차별 조장, 국민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 내외국민 차별 강화 등의 인권 침해적 요소를 갖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는 궁극적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열세자리 숫자다. 국가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쥐고서 국민 위에 군림할 권리가 없다.

국민에 대한 차별과 감시를 앞장서서 자행하는 역할이 아닌, 국민에 관한 정보를 최소한도로만 수집하고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가려서 공개하고 자유롭게 사용하는데 있어 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일 것이다. 주민등록번호의 폐기 및 새로운 일련번호 체계 마련과 더불어, 국가 신분등록제도를 포함하여 주민등록번호와 맞물려 운용되는 국가 제도 전반에 걸친 변화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물론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회 문화적인 변화와 함께 이루어져야 보다 힘을 받는 것이 법제도적 변화이지만, 법제도적 변화 모색이 사회 문화적인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는 강력한 기제라는 점 역시도 자명하다면, 국민의 프라이버시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한 국가의 변화 모색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