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디지털칼럼
우리에게 보호받을 사생활은?

전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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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사생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사생활이 과연 있기나 한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는 공동체적 질서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소한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것처럼 간주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고 느끼고 주장하게 되는 경우는 특별히 자신과의 친소관계가 먼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듯하다. 웬만큼 친숙하고 익숙한 관계에서 사생활 보호란 보통 농짓거리로 흘려 지나가기가 일쑤인 것 같다.

프라이버시는 과연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그것은 직관적으로나 선험적으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가치로 선뜻 수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왜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프라이버시 보호의 수준은 그렇게 사람마다 다르며, 또 다른 서구인들이 느끼는 사생활 보호의 감각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개인정보의 노출에 대해서 관대하며, 심지어 담대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만큼 개방적인 것일까? 원칙적으로 말하여 사생활에 대한 감각은 각각의 사회가 지닌 문화적 가치의 차이만큼이나 사회마다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감각이나 수준과 무관하게 정보통신기술이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를 드리우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비록 낮은 수준에서라도 개인정보를 노출할 경우 우리 스스로조차 상상하기 힘든 재앙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사생활 보호의 감각에 꼭 의존해서가 아니더라도, 삶에 일상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사생활 침해의 위험으로부터 최소한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개인정보보호의 장치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필자는 며칠 전 보건의료인들이 보건의료정보와 관련된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검토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보건의료인들이 피진료자인 환자의 개인정보에 대해서 갖고 있는 통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의료인들 중에는 환자의 진료기록을 의료인들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일종의 자신의 연구기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는 것이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개인의 진료기록을 어떻게 활용하며,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점차로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개인 의무기록에 대한 정보공유의 문제는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중의 하나이다. 보통 연구목적, 공중보건 등과 같은 공공적인 목적이나 진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개인의무기록의 표준화에 대한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필자를 또 한번 놀라게 한 것은, 상당수의 의료인들이 환자의 의무기록이 의사의 의료서비스 제공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교환거래의 일부분으로 생겨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정보공유에서 생겨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상거래행위에 대한 우려는 할지언정, 정작 자신이 취급하는 환자의 의무기록에 대한 정보남용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한 것처럼 보였다. 과연 우리에겐 보호받아야 할 개인정보, 사생활의 영역이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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