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장애없는
시각장애인의 버스 타기

김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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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2004년 7월 1일에 대대적으로 버스노선을 개편하고 중앙차로제를 시행하였다. 버스를 이용한 이동시간이 짧아졌다는 장점은 있으나, 적절하지 않은 구간까지 중앙차로로 만들면서 오히려 전체 차도의 폭이 줄어 승용차나 영업용 차량들은 상대적으로 형평성이 없다고 한다. 홍보부족과 기존노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도 버스 이용자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하물며 시각장애인은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을까? 시각장애인인 김모씨는 버스개편 이후 미루어왔던 외출에 나섰다. 미리 여기저기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버스 이용방법을 알아두었지만,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가 다르니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섰다.

원래 있던 버스정류장에서 새로운 정류장으로 점자블럭이 깔려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처음부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차로 정류장으로 가는 횡단보도가 어디에 있는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기존의 횡단보도 음향신호기가 제거되지 않아 위험천만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길을 건넌 다음,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표지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장애인 표지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고 도움을 준 사람은 어디론가 떠났다. 버스 번호와 노선표를 볼 수 없어서 바로 앞에 버스가 멈출 때마다 행선지를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많은 것이 이전과 비교되었다.

오랫동안 버스 노선이 만들어지고 정착되면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도 높아지고 있었다. 물론 만족할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정보와 익숙함으로 나름대로 도로나 대중교통과 친숙해져 있었다. 거금을 들인 이번 버스 개편은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온 삶의 방식을 뒤집어버린 그야말로 대사건이다.

시각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보장되어야 할 몇 가지 편의설치물이 있다. 횡단보도에 음향신호기가 설치되어야 한다. 버스가 어디를 경유하는지, 점자 및 음성안내기가 설치되어야 하고, 저시력인을 위해 버스노선 안내판 글씨를 확대하고 눈높이에 부착되어야 한다. 또한 도착한 버스가 몇 번인지 식별할 수 있도록 음성안내장치를 설치하여, 시각장애인용 리모콘을 눌렀을 때 번호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리모콘은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층에만 보급되고 있는데, 장애보조장구로 인정하여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보급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인협회는 버스개편과 관련하여 서울시에 이러한 내용으로 시정을 촉구하였다. 서울시에서는 홈페이지와 각종 홍보물을 통해 개편 정보를 알려주고 있으나, 홈페이지는 시각장애인들의 스크린리더로 읽을 수 없어서 정보접근권이 보장이 되고 있지 않다. 홍보물은 제작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미루어오고 있다가, 시행 후 3개월 시점인 현재 점자홍보물 3,000부와 녹음테이프 1,000개가 제작 중이나 턱없이 부족하다. 버스정류장에 음성안내기를 설치하는 것도 내년 예산에 반영할 것이고, 서울시의 버스정류장은 4,800개소인데 1,000개소에 음성안내기를 설치하겠단다. 횡단보도의 음향신호기는 경찰청에 요구하였으나 아직 변화체감을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때로 갖은, 궂은 소리와 대접을 받아도 인내와 배짱으로 세상과 부딪혀왔다. 그런 의지로써 그나마 스스로 만들어 온 안전한 삶의 방식까지 무시하는 행정으로 인해 장애를 겪는 민초의 입장에서는 선한 국가라 믿어야 하는지.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 내용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시행되어 오던 것이고, 기존에 요구되던 것들인데 왜 일괄된 계획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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