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이동영의
IP 주소가 모자란다

이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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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v6란 무엇인가? 정보통신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IPv6란 용어를 종종 볼 수 있다. IP는 인터넷 통신 규약(Internet Protocol)의 약자이며, v6는 6번째 개정판(version 6)이란 뜻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인터넷은 IPv4이므로, IPv6는 차세대 인터넷 통신 규약이라 할 수 있겠다.(IPv5는 실험적으로 만들어졌다가 폐기되었다.)

IPv6, 실용화를 위한 연구 활발

IPv6가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IP 주소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들은 IP 주소를 갖는다. 전화 네트워크에 연결된 전화기들이 전화번호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의 인터넷(IPv4)에서 인터넷 주소는 2진수로 32자리인데, 모두 약 43억여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43억이라는 숫자가 크기는 하지만, 60억이 넘는 세계 인구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 게다가 앞으로 컴퓨터뿐만 아니라 전화기, 가전제품 등도 인터넷에 연결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IP 주소가 부족해지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나 유럽에서는 IP 주소의 고갈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IPv6를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와 준비작업이 활발하다.

IPv6의 주소 크기는 종전의 32자리(비트)에 비해 훨씬 큰 128비트로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주소를 쓸 수 있다.(43억을 네제곱한 숫자인데, 대략 3뒤에 0이 38개있는 숫자보다 크다.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유비퀴터스 컴퓨팅에 사용하기에도 충분할 숫자일 것이다.

IPv6 전환의 어려움

IP 주소가 부족해지기 때문에 현재의 인터넷을 IPv6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먼저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수많은 기계들이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인 인터넷을 바꾸기는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기계들을 단번에 바꾸고 재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상당한 시간 동안은 IPv4와 IPv6가 공존하여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로서는 말 그대로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쉽게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터넷 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IPv6로의 전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IP 주소 자원의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시아나 유럽 지역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은 넓은 영역의 IP 주소를 미리 확보하였기 때문에 아직 별다른 부족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5% 미만이지만, 전체 IPv4 주소 중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IP 주소의 효율적 사용

사실 IP 주소가 부족해진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지만, 그동안 별탈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부족한 주소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미봉책을 써 왔기 때문이다. 첫째는 CIDR(Classless Inter-Domain Routing)이다. 종전에는 A, B, C 클래스라는 고정된 크기(각각 1600만, 6만5천, 250여 개의 주소를 포함한다)를 단위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왔는데, 이렇게 하면 불필요하게 큰 주소 공간을 쓰게 되어 낭비가 심하다. 예를 들어 300대의 컴퓨터가 있는 네트워크의 경우 C클래스는 너무 작으므로 B 클래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6만 5천여 개의 주소 중 300개만 사용하므로 나머지는 모두 낭비되는 것이다. CIDR은 이런 제한을 없애고 2의 배수 단위로 네트워크의 크기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앞의 예에서는 512(정확히는 510)개 짜리 네트워크를 쓰면 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네트워크 주소 변환(NAT: Network Address Translation) 기술로서, 흔히 인터넷 공유기라 불리는 기계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즉 내부 네트워크에 있는 여러 대의 컴퓨터가 한 개(혹은 수 개)의 IP 주소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IP 주소를 공유하는 것이 완벽하지 않아서, 웹서핑 등의 용도로는 문제가 없지만 서버 프로그램이나 P2P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다. 내부 네트워크에 있는 여러 대의 컴퓨터들이 밖에서 보기에는 하나의 IP 주소를 갖는 하나의 컴퓨터처럼 보이는데, 한 대의 컴퓨터에서 웹 브라우저 창은 한꺼번에 여러 개를 띄울 수 있지만, 서버나 P2P 프로그램(메신저 등)은 보통 하나씩만 띄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세번째는 DHCP(Dynamic Host Configuration Protocol)이다. DHCP의 원래 목적은 네트워크 설정을 자동으로 하는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여러 컴퓨터들 사이에 IP 주소를 공유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어 컴퓨터가 20대 있는 상황에서 동시에 켜져 있는 컴퓨터의 수가 10대 이하라면 10개의 IP 주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멀티캐스트 지원과 보안 기능

IPv6가 필요해진 가장 큰 이유는 IP 주소 부족 문제이지만, IPv6는 그 외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멀티캐스트를 지원한다는 것과 보안 기능을 덧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멀티캐스트란 여러 명의 수신자에게 한꺼번에 전송하는 방식을 말한다. 종전에 사용된 일대일 통신방식을 ‘유니캐스트’라 하는데, 이 방법으로 같은 내용을 여러 명의 수신자에게 보내려면 한 명, 한 명씩, 여러 번 중복해서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보내는 쪽의 부담이 매우 컸다. 멀티캐스트 방식에서는 수신자의 수에 관계없이 한꺼번에 보내면, 네트워크가 알아서 각각의 수신자에게 데이터를 전달해 준다. 동보 팩스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장점은 송신자 확인, 암호화 등의 보안 기능이다. 작년에 미국 국방부가 내부 네트워크를 IPv6로 바꾸어 갈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그 이유는 IP 주소의 부족이 아니라 보안 등의 부가기능 때문이었다. 특히 점점 일반화되는 무선 네트워크에서는 유선에 비해 도청의 위험이 더 큰데, IPv6를 사용하면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IPv6 실용화 불분명

IPv6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반드시 IPv6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소 부족 문제는 당분간은 여러 미봉책들을 써서 버틸 수 있고, 다른 부가기능들도 현재의 인터넷에서 세련되지 못하나마 가능하기는 하다. 한편 IPv6로의 전환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최근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네트워크 장비나 윈도우즈 XP가 설치된 PC 등은 IPv6를 이미 지원한다. 단지 그 기능을 아직 켜고 있지 않을 뿐이다. IPv6가 언제 실제로 사용될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언젠가 IPv6가 실용화된다면 우리나라가 그것을 처음으로 쓰는 나라 중 하나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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