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여기는
‘똘레랑’ 블로그 폐쇄 사건

이강룡  
조회수: 4847 / 추천: 56
네이버에서 ‘똘레랑’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이(이하 ‘똘레랑’)의 ‘똘레랑스는 칼이다(http://blog.naver. com/dominic74)’라는 블로그가 일시적으로 폐쇄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대강은 이러하다. 똘레랑이 8월 30일, 블로그에 올린 글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이 국가보안법상에 위반될 만한 반사회적 게시물이라며, 네이버 운영진이 9월 6일 그의 블로그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그가 올린 것은 네이버 뉴스에도 올라가 있는, <한겨레21> 제517호에 실린 한홍구 교수의 글이었으며, 똘레랑 블로그는 이틀 후인 9월 8일 접근 제한 조치가 해제되었다. 이 사건이 더욱 주목받게 된 것은 한창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다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시기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똘레랑은 블로그 잠정 폐쇄 기간 동안 임시 블로그(http: //blog.naver.com/toleran2004)를 개설해 다른 블로거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자신의 블로그와 전화 등을 통해 네이버에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네이버 운영진이 보내온 첫 번째 사과문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이적단체에 대한 찬양/고무/선동에 대해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략) 회원님께서 게시하신 포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항이 국가보안법 및 저작권법에 저촉된다는 다른 회원분들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1. 타인 저작물을 무단으로 전재한 게시물-저작권법 위반
2. 이적단체 및 그 구성원에 대해 찬양/고무하였음-국가보안법 위반

(중략) 이에 따라 증거 보전 및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접근 금지 조치를 내렸으며, 사실 확인 결과 위반 사항이 경미하거나 신고 내용과 다른 점이 확인되어 접근 금지 조치를 해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똘레랑은 무성의하고 논점을 빗나간 답변에 항의해 또 한번 성실한 사과문을 요구했고, 네이버 운영진의 두 번째 사과문이 전달됐다. ‘죄송하다’는 말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번째 사과문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내용 일부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저희 서비스지원센터 아르바이트 요원의 실수로 똘레랑님의 블로그가 일시적으로 접근제한 되었던 점, 저희 네이버 커뮤니티팀 직원들과 서비스지원센터 직원들 모두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중략) 똘레랑님이 원하셨던 아르바이트 요원과 똘레랑님의 블로그를 신고한 신고자의 실명과 연락처를 알려드릴 수 없었던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중략) 똘레랑님의 블로그에 대한 이용자의 신고가 있었고, 이 신고에 순간적으로 오판을 한 아르바이트 요원의 명백한 실수였습니다. (중략) 똘레랑님, 또한 신고자와 접근제한조치를 한 아르바이트 요원의 실명과 연락처를 공개하지 못하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그리고 똘레랑님 뿐만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의 그 어떤 블로그도 저희 네이버에서는 사상적으로 ‘검열’하거나 ‘감시’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똘레랑님, 노여움 푸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두 번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똘레랑은 9월 14일 네이버를 항의 방문했고, 블로그 첫 화면에 사과 공지문을 2주일 이상 게시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사건에 대한 블로거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피패러다임(http://p-paradigm.com)이라는 블로그 운영자가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남긴 글이다.

“네이버가 드디어 한 건 하셨다. (중략) 아하하. 네이버는 ‘악법도 법이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계셨다. 무단전재가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네이버는 블로그 서비스 초기에 네이버 뉴스의 모든 기사를 ‘스크랩’ 버튼 하나로 자신의 블로그에 손쉽게 무단 전재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경찰이나 국정원보다 앞서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알아서 걸러내는 초공권력을 보여 주셨다.”

어떤 블로거는 아르바이트 직원의 작은 실수를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는데, 이 글에 다음과 같은 의견이 달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모두 이해해주면 세상에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을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네이버 같은 회사의 어떤 단위 결정권자의 결정은 곧 그 회사를 대표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 결정권자는 그걸 당연히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걸 부인한다면, 그럼 네이버의 그 수많은 블로그 이용자들이 단순히 어떤 단위의 결정권자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이건 관용이니 뭐니의 문제가 아니고, 권리와 책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사이트에 사과문이 공지되고 당사자가 이를 받아들이면 사건은 일단락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해프닝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20대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블로그 게시물에서 ‘김일성’ 이라는 단어만 보고 흠칫 놀라는 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똘레랑 블로그 폐쇄’는 슬픈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