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7호 사이버
인터넷에서 페미니스트들에게 질문하는 법

권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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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사이트인 <언니네>는 ‘여성주의 지식놀이터’라는 게 있다. 올 8월에 개장하여 벌써 2500여 개의 질문과 고민들을 나누고 있는데, 최근 이 지식놀이터에 몇몇 남성들이 올린 질문들 때문에 회원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일이 있었다. 질문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단 질문하는 방식을 성찰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방식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말 대답을 듣고 싶다면, 이 정도는 지켜주었으면 한다.

첫째, 일단 질문자가 왜 궁금해하는지에 대해 맥락적으로 설명하라. 레포트 때문인지 아니면 시비를 걸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호기심인지 등 질문자의 의도와 맥락이 파악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입장에 대해 대답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이 “당신 이번 헌법소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라고 묻는다면, 어디 신문사에서 나왔는지 본인의 입장은 무엇인지 먼저 들어본 다음에 대답하게 되지 않겠는가. 자신이 왜 그걸 묻는지 설명하는 것은 질문하는 사람의 기본 예의이다.

둘째, 페미니스트들은 단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편견을 버려라. “페미니스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페미니즘은 단일하지 않다”“나는 나만을 대표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네티즌 중 일부 남성들은 자신이 모든 남성 혹은 일반 평균 남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남성이 특정한 집단이 아니라 곧 인간 전체를 가리키는 기호로 사용되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페미니스트 대표가 되어 대답하는데 부담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셋째, “다른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남성임에도 다른 여성을 대변해서 말하지 말라. 여성들 간의 차이는 남성과의 연관 속에서만 의미화된다. 예를 들어 가족 안에서의 어머니, 아내, 딸과 같이 혹은 남성섹슈얼리티에서 ‘성모’와 ‘창녀’처럼 말이다.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예속적 연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과정이다.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순간 남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하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이 정도를 지켜주면서 묻는다면, 이전보다는 훨씬 정중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리플을 다는 몇몇 참을성 없는 네티즌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어찌됐건 간에 원고료를 주거나 강의료를 받지도 않는데 일일이 그 질문들에 대답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운동이므로 자신 역시 설득해보라고 말하고는 하는데... 알겠다. 알겠는데, 당신을 설득하는 것보다 다른 남성들이 저지른 각종 나쁜 짓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바쁘고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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