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7호 칼럼
특허청=특허권자연합단체(?)

권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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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민중의료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안한 특허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상업적 강제실시’로 규정된 현행법에서 ‘비상업적’이라는 조건을 삭제하는 것과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특허청이 사유재산인 특허권과 공익의 조율을 위해 예민한 지적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식경쟁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특허청이 국가기관이니까 명분상으로나마 국민의 권리보호, 공공의 이익 등을 언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 자리에서 특허청은 특허권자만을 위한 철통수비대 역할을 철저히 했다.

특허청은 강제실시권 제도의 존재 자체만으로 특허권자에게 큰 부담이 되므로 강제실시의 남용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실시제도는 특허권의 활용과 기술확산을 위해 100여 년 전부터 활용된 제도이지만, 한국에서는 강제실시가 남용된 사례가 없을 뿐 아니라 강제실시가 활용된 적조차 없다. 그런데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남용하여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노력 없이 남의 결과물에만 편승하려는 심리를 조장할 가능성만을 언급했다.

또 특허청은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조치사항은 선진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국제조약의 취지에 비추어 말썽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특허청이 세계무역기구(WTO)협상 등에서 무엇을 우선시하고 누구의 입장을 따르는지 알만한 부분이다. 최근 몇 년간 WTO협상과정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들은 의약품접근권을 비롯한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제기해왔고, 2001년 WTO각료회의로 하여금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 선언문’을 채택하게 함으로써 공공의 건강보호가 제약회사의 특허권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이번 특허법 개정안은 그 선언문의 연장선상에서 제출된 것이다. 특허청은 국제조약의 취지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구미에 맞추자는 얘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특허청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특허권이 다른 사회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허권을 부여하는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국가가 권리의 범위를 정형화하고 공익과 사익의 충돌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역할조차 버렸다. 특허청은 특허권자의 이익과 국가이익이 같은 방향인 시대가 도래했다며, 특허권자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등치시켰다. 그렇다면 기술활용과 확산을 통해 전세계 수천만명의 의약품접근권을 확대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과 어떻게 반하는지, 특허제도의 취지와 어떻게 반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단순한 등치공식을 가지고 특허권자와 선진국의 눈치만 보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국가의 중립을 믿지는 않지만, 특허청이 국가기관으로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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