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8호 표지이야기
병원들 앞다투어 의료정보시스템 도입
고용불안정, 노동감시, 개인정보 침해 논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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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병원에 갈 일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주 낯선 풍경을 발견했을 것이다. 간호사가 병원 한쪽을 가득 채운 차트들 중에서 환자의 것을 찾는 모습도, 담당 의사가 진료 후에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영문 필기체로 처방전을 쓰는 모습도, 처방전을 받아 든 간호사가 주사를 놓거나 원무과 직원이 진료비를 계산하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의사가 키보드와 마우스로 처방전을 작성하고, 처방전이 간호사실과 원무과로 바로 전송되어 처리된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며칠을 기다려서 다시 병원에 가서 확인하던 모습도 촬영과 동시에 영상 파일이 의사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각종 정보화 기술, 병원에 상륙

모두 의료정보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가능해진 일이다. 지난해 6월 개원한 분당서울대병원은 차트·필름·종이·전표가 없는 이른바 ‘4Less를 구현한 100% 디지털병원’을 표방하면서 PDA 500여대, 노트북 PC 100여대를 의료진과 병동에 보급한 바 있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종합병원의 하나인 서울대병원이 지난 10월 1일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도입했다.

서울대병원 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의료기관에서 EMR 도입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EMR은 진료 중 발생한 환자의 모든 정보를 전산화함으로써 의료기관의 수기작업을 최소화한 것으로 단순한 형식의 전환을 넘어 환자 대기시간 감소 및 정보저장의 편의성, 환자기록에 대한 의료인의 접근 용이, 정보의 다양한 활용, 비용절감 등 유무형의 가치가 엄청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공간 및 소모품비용 절감과 인력운용 효율성 등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도 부풀리고 있다.

의사의 처방을 간호사와 원무과에 전달하는 처방전달시스템(OCS)의 경우는 전국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병원의 90% 정도가 이미 OCS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아직 도입하지 않은 병원들도 내년 경에는 구축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유비쿼터스 병원 추진

또한 24일 강남성모병원 최병길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영상저장전달시스템(PACS)을 도입하고 있는 국내 병원은 9월 현재 종합병원은 241곳 가운데 144곳에서 PACS를 도입해 59.8%의 보급률을 보였고, 종합전문요양기관의 경우 전체 42곳 중 37곳에서 PACS를 도입, 보급률이 88.10%에 달하고 있다.

‘인터넷 진료’, ‘모바일 병원’, ‘유비쿼터스 병원(u-hospital)’ 등의 개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원격진료협회는 자체 개발한 원격진료 홈페이지와 화상카메라, 헤드셋 등을 통해 지난 3월부터 경남 사천시 신수도 주민, 초읍 신애재활원 원생 등을 대상으로 인터넷 원격진료를 펼치고 있다. 연세대의료원이 지난 6월 발표한 u-호스피탈 구축사업은 처방전달시스템(OCS), 전자의무기록시스템(EMR), 전사자원관리시스템(ERP) 등을 종합적으로 구축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정보화 프로젝트로서 특히 모든 솔루션에 모바일 모듈을 탑재해 유비쿼터스 의료환경을 시현한다는 계획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고용불안정, 노동감시,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그러나 이러한 병원 정보화가 병원의 이윤 향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병원노동조합은 올해 단체협상에서 EMR 도입에 따른 병원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과 환자 정보의 유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의 한 간호사는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2시간도 안되는 교육을 받았을 뿐이며, EMR 도입 후 노동강도가 증가했고, 화면 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거나 인수인계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전북대병원은 원가 감소, 환자 및 직원 정보의 통합 관리, 성과관리 등의 목적으로 경영정보통합시스템(ERP)를 도입했고,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고 직원을 감시 통제, 서열화하는 동시에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다고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또 한편 한국 IDCR이 최근 조사 분석한 보고서는 의료정보시스템을 설치한 국내 병원중 보안 솔루션을 도입한 곳은 45%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병원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에도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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