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8호 교육과
수학능력시험과 인생

김정욱  
조회수: 2065 / 추천: 48
11월 17일. 올해도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전 국가적인 행사가 치러졌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끝까지 쫓아다닐 성적표라는 것을 받아들 것이다. 대학이라는 목적을 위한 모든 노력은 그렇게 한 순간에 끝이 난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제일가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하느냐이다. 물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일치한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 이 관심에는 정도의 차이가 없다. 학습능력에 의한 차이도 없다. 가장 차이 없는 이 관심은 역설적으로 지독한 차별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학벌주의 사회. 아니, 학벌주의를 넘어 학벌세습 사회 속에서의 성적에 대한 관심은 어느 누구에도 차이를 두지 않는다.

학벌중심 사회는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조차 부정행위를 하게끔 만든다. 물론, 휴대폰을 사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들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어른들 또한 모두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성교육이니 하는 말은 한낱 형식적인 수사에 그친다. 오히려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학생 시절, 시험이 끝난 후 학교 현관에 걸려있던 성적표를 기억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하는 의미로 걸어놓은 것이었겠지만,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었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자신의 성적은 대단히 민감하고 소중한 나만의 비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시절에 우리는 이러한 조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이 발전하면서 이런 일은 거의 없어졌다. 물론, 아직도 일부(?) 학교에서는 성적을 모든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있으며, 학교 차원은 아니더라도 학급이나, 교사 개인에 의해 학생들의 성적이 공개되고 있다. 현 초중등 교육과정에는 전체 석차를 두는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석차를 산출하고 있다. 물론, 진학 지도라든가, 학생들의 학습지도를 위해 개인의 전체 석차를 교사가 알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성적이라고 한다면 생산과 관리에 있어서의 지침이라도 있어야 할 것인데, 정보 보호와 관련된 지침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학생 등 각 교육주체가 학교에서 생산된 개인 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와 관련된 법률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도 드물뿐더러, 어떤 중요함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직도 교육청단위의 공문에서는 교사나 학생들의 주민등록번호가 공개적으로 탑재되어 있으며, 어떤 보호과정도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민감한 정보에 대해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 경쟁만이 제일이라는 사고가 팽배한 우리 문화 속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개인정보보호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학생들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성적과 같은 민감한 사안은 공개되어야 하는 부분과-성적이 산출되는 과정은 공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학생들의 기본권이 충족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호에서 얘기했듯이 학생들의 정보인권은 학생인권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반적인 학생 인권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개인 성적을 공개하는 반인권적 상황이 개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각 교육주체 및 인권단체의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