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8호 인터넷트렌드
IE, 잔치는 끝났다

최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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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생각해 보시라. 지금은 단종된 구형 그랜저를 타고온 사람들만 입장시키고 나머지는 출입을 제지하는 동사무소가 있다면? 무슨 해외토픽 아니냐고 하신다면, 단호히 “대한민국 전자정부(https://www.egov.go.kr/)가 바로 그렇다”고 답해줄 수 있다. 지금 당장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이하 MS-IE)가 아닌 웹브라우저를 통해 전자정부 사이트에 접속해 보시라. 당장 이런 표시가 여기저기서 뜬다. “요청하신 서비스가 정상 처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전자정부 사이트가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왈, “신속하고 편리한 민원업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란다. 단적으로 정부가 특정 사기업이 판매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국민들을 “사용불가”라는 딱지를 붙여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법규정상 공공기관은 장애인들의 출입을 위한 편의시설을 당연히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헌법 전문을 상기해 본다면 절대 있어서는 않되는 일이다. 그나마 전자정부는 좀 낫다. 문화관광부 홈페이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며, 우체국 홈페이지는 애드웨어(Adware)를 설치하기까지 한다.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여기서 예를 든 사이트 이외의 사례를 보려면, “웹 표준화 프로젝트”(http://forums.mozilla.or.kr/viewforum.php?f=9)를 참고하시라.)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 문화관광부의 웹페이지의 두 버전(http://www.mct.go.kr/와 http://www.mct.go.kr/blin d/index.jsp)을 비교해보라. 어느 쪽이 좀더 정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같은지.

이런 답변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 99%가 MS-IE를 사용합니다”. 그럼 나머지 1%는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그 1%를 고려한 웹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정과 인력이 어마어마하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보안이 문제라고? 그럼 128비트 암호화와 SSL을 이용한 외국의 거대 은행들은 모두 보안에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있는건가. 오히려 GUI가 제공되는 모든 웹브라우저는 128비트 암호화와 SSL을 지원하므로, 이 방식을 이용하면 보안상의 문제없이 그리고 웹브라우저의 차별없이 평등한 웹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방식은 오히려 비용이 덜든다.

또 하나, 99:1을 말하는 논리는 “당신은 입 다물어라 - MS-IE 사용해라 -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요구가 들어 있다. 그래서 “경국대전 이래 관습헌법은 수도가 서울이며, 서울은 옮기려면 헌법을 고쳐라”라고 주장하는 헌법재판소의 어긋난 충정을 “당신은 입 다물어라 - 헌법재판소를 인정해라 -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다”라고 말하는 논리가 횡행하는지도 모르겠다. 권력에 의지에 복종하라는 이 논리는 파시즘의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내 대답은 이렇다. “싫다! 정부가 고쳐라. 잘못된 것은 정부다”.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 지난 11월 9일 환호를 했다. 전세계 70여곳에서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왜? 모질라재단(http://www.mozilla.org)에서 “파이어폭스/FIREFOX”(이하 “불여우” - 영문명 파이어폭스를 불여우로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왜 ‘파이어폭스’ 대신 ‘불여우’를 사용하는가?(http://www. help119.co.kr/blog/archives/000618.html)”를 참조하길 바란다.) 버전 1.0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9일부터 첫 3일 동안 접속자가 폭주하여 다운로드조차 불가능한 상황은 정말이지 모처럼만의 감격이었다. 이제 MS-IE에 대한 불여우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통계가 증명해 주고 있다. 불여우가 0.1 버전을 발표하고 나서 1.0 버전이 되기까지의 약 2년 동안, 모질라계열의 웹브라우저 점유율은 8%에서 21%로 수직상승했다. 물론 전세계 차원의 통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모질라계열의 점유율이 3%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왜? 주범은 바로 ActiveX기반의 “공인인증서”라는 미명의 사설인증서를 정부가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기관과 은행 등 보안을 필요로 하는 모든 웹서비스에 ActivX기반의 신원인증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의 운영체제(MS-Windows)와 웹브라우저(MS-IE)위에서만 구동되기 때문이다. 게임과 같은 사적인 취향이야 포기하거나 혹은 다른 것을 찾으면 그뿐이지만, 인터넷뱅킹같은 공공서비스는 포기할 수도 없을 뿐더러, 공공서비스라서 대체제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관인 것은 저작권법의 친고죄 체계를 폐지하고 형사법으로 다루겠다고 입법안이 제출된 상태라는 점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해보자.
저작권을 침해하면, 저작권자의 고소가 없어도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한다. 정부는 MS-windows와 MS-IE만을 사용해야만 이용이 가능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려면 MS-Windows를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한글 Windows XP Home Edition” 정품 가격이 약 263,000원이다. 모든 국민이 MS-Windows를 설치하기 위해 263,000원을 지출하든지, 아니면 불법복제를 하든지 해야 한다. 둘중 하나 외의 선택은 없다. 한마디로 국민들을 범법자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참고로, 지금도 돈을 주고 구매하지 않은 MS-Windows의 사용은 단연히 불법이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고소하지 않고 묵인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는 것 뿐이다. 그러나 친고죄가 폐지되면, 마이크로스프트의 고소가 필요없다. 경찰은 법을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2004년 대한민국에서 MS-Windows 이외의 다른 OS를 사용하자고 또 MS-IE 이외의 다른 웹 브라우저를 사용하자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이제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표준을 지키자’는 문제도 아니다. 강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기업 독재의 파시즘 국가가 되는 것을 저지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 사회적 운동의 문제인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적어도 사회운동단체들은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MS-Windows를 지금 당장 없앨 수는 없더라도, 브라우저 정도는 MS-IE 이외의 것으로 바꾸어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로서는 매력만점의 불여우를 추천한다. 불여우는 http://www.mozilla.or.kr 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겨우 4.5MB만 다운받으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당장 불여우가 부담스럽다면,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IE 클론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Avant Browser(http://www.avantbrowser.com/)나 넷캡터(http://www.netcaptor.com/), jwBrowser(http:// cyber.teamjang.com/), Maxthon(http://www.maxthon.com /en/index.htm) 같은 탭브라우징이 가능한 IE 클론을 1주일만 써도 다시는 MS-IE를 사용하기 싫어진다는 점을 보장한다. 그리고 불여우를 사용할 때마다 만나는 불편사항에 대해서 불평하라. 고쳐달라고 요구하라. 정당한 권리이자, 훌륭한 운동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안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하는 XP SP2가 온동네 컴퓨터에 모두 설치되었다. 팝업창이 뜨지 않으니 좋은가? 불안한 ActiveX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으니 좋은가? 그럼 “SP2, 보안을 가장한 「새로운 독점 전략?」(http://www. imaso.co.kr/hotissue/article.html?id=5276)”을 한번 읽어 보라. 클라이언트를 이용해 서버측을 독점적으로 장악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무섭지 않은가.

다양성은 영화에만 문제가 아니다. 종의 획일화는 결국 멸종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어디서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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