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8호 만화뒤집기
그들 앞에는 “헤이, 웨잇...”의 고통스러운 2부가 남아있을 뿐인가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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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부정 사태를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어떤 학생은 “이렇게 큰 사건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몰랐다고? 어찌 그 뻔한 것을 몰랐을까? 누군가가 부당한 점수를 취하면 어디선가는 억울한 손해를 보고야만다는 것을. 마치 남들의 억울함을 딛고 누군가는 큰 이익을 취하는, 남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이런저런 세상일과 마찬가지일 것인데.

하지만, 그 학생들을 비난하는 일이야, 일찍이 입시지옥으로부터 비굴하게 제 한 몸 건사해 나온 어른들이 워낙 잘 알아서 하고 있으니, 구차하게 여기서 반복치 말자. 각종 매체에 보이듯, 잘못을 저지른 청소년들을 무찌르면서, 이토록 통쾌해하는 심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쩌면 그 어른들은 자기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낙오자들을 제껴 쓰러뜨리던, 입시지옥에서의 무용담과 그 소싯적 쾌감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이런 철없는 마음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다. ‘큰 사건일 줄 몰랐다’는 말은, 꾸짖음을 피할 수야 없겠지만, 또한 얼마나 슬픈 말인가. 실정법에서 어긋난 것은 아니었지만,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지우고 싶은 과거가 없는 사람, 과연 어디 있으랴.

좀 생뚱맞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필자는 이 사건을 바라보며 제이슨의 “헤이 웨잇”을 떠올렸다. “헤이 웨잇”을 읽고 나면 마음이 시리다. 이 두껍지 않은 만화는 1부와 2부로 되어 있는데, 1부의 대부분은 철없이 뛰어노는 어린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어린 마음에 친구와 함께 ‘새로운 장난’을 기획한다. 그러나 그 장난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고, 어린 시절은, 두꺼운 칼로 썩은 무를 끊어버리듯 툭, 하고 사라진다. 주인공 역시 몰랐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장난이 “이렇게 큰 사건이 될 줄은”.

2부는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어른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어둡고 긴 터널과 같은 슬픈 2부이다.

“헤이 웨잇”의 1부와 2부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것이 “니벨룽의 노래”보다 훨씬 설득력있고 우리에게 와닿는 것은, 영웅도 기사도 나오지 않고, 다만 일상생활의 천당과 일상속의 지옥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작가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1부도 2부도 모두 정형화된 6컷의 리듬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6컷의 일상이 앞에서는 천국이고 뒤에서는 지옥이다. 그리고 그 경계는 단지 어린 시절 한 순간의 거친 장난이었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부정에 관련된 학생들을 ‘엄정하게’ 처벌하자고 한다. 전원 구속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이야기인지라, 딱 부러지게 반박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 ‘원칙에 따라’ 형기를 마치고 이른바 ‘전과자’가 되어 이 사회에 나왔을 때, 그들을 다시 따뜻하게 맞이하고 기회를 줄 능력이 이 사회엔 있는가 필자는 묻고 싶다. 이 사회는 그들에게, 어둡고 긴 터널과 같은 ‘2부’를 제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애초에 어떻게 해서든 좋은 점수만 받으라며, ‘숨은 원칙’을 일러주던, 범죄를 교사하는 이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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