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8호 기자칼럼
정보화 사회의 관음증

이상진  
조회수: 1244 / 추천: 39
요즘 공중파 방송에서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오락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필자의 초등학생 조카들은 몰래 카메라 코너를 아무런 부담없이 즐겨본다. 재밌어 하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계획된 찰라의 순간이 되면 괴성(?)을 지르며 몸들 바를 몰라한다. 카타르시스라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의심될 정도다.

이러한 프로는 제작진의 계획된 연출을 모른 채 그 속에서 매우 진진하게 당황해 하는 순진한(?)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여주려 한다. 게다가 양심에 꺼리낌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 편하게 관조할 수 있는 편안함까지 준다. 마치 신이 하늘 위에서 지켜 내려보듯이... (고맙게도 ‘보고 있는 나’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다니... 들키지 않고 누군가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예전에는 개그맨들이 거리에서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며 지나가는 행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깜짝 카메라 코너가 있었다. 박장대소하는 사람, 고개만 돌아가는 사람, 입이 딱 벌어진 사람,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람 등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보며 재미를 만들어 냈다. 이처럼 단순한 상황 설정 속에서 사람들을 탐문하게 된 것이, 이제는 내 연인을, 내 가족을 시험에 들게 하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러한 경향은 ‘너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고, ‘우리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한 사회적 욕구의 소산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정보화 사회의 특징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이성이 누군가를 시험에 들게 하여 재미를 얻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비록 인간이 호기심도 많고 보고싶은 것도 많다지만 그 욕구들을 전부 충족시킬 수는 없다. 상대방을 이유없이 빤히 쳐다보면 실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유야 간단하다. 역지사지다. 누구나 관람의 위치는 편할지 몰라도 구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신경쓰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불쾌한 상황이라면 다른 이에게도 불쾌한 상황이니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자는 문화적인 약속인 것이다.

‘뭐 대단한 거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논외의 문제다. 비록 방송에 내보내기 전에 시험 대상이 된 이가 방송을 통한 자신의 ‘노출’을 동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관행과 상식은 무서운 것이다. 점점 관음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보는 재미에 익숙해져 ‘상식’을 잊고 살다가 어느 날 피사체(被寫體)로서 불쾌한 경험 또는 수치를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네트워커 기자로 취재를 다니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서울대 공대 웹캠(네트워커 15호 참조)이다. 당시 웹캠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전산실 조교와의 대화 속에서 묻어나는 묘한 경계의 분위기와 그의 침묵을 깨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체험은 경외감과 공포의 교차였다. 관람자의 위치에 있을 때 가졌던 기술에 대한 경외감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올 때 피사체로서 의당 보여 주어야 할 행동들을 취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곧바로 공포감으로 돌변했다. 공대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카메라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상상해 보라. 몰래 구경했던 그 은밀한 장소에 본인이 피사체로 있게 된 상황을... 그리고 카메라까지 자신의 시야에 감지될 때를 말이다.

정보화 사회는 알고 싶고, 보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럴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역지사지의 정신이다. 카메라를 들이밀거나 카메라를 설치하기 전에는 조심했으면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관음증 환자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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