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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기어이 강제적인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기 위해서 주민등록법을 2005년에 개정하여 주민등록 사항의 진위확인 조항(제19조)을 만들었다. 즉, 주민등록번호의 진위여부를 국가전산망을 민간에 개방하여 확인시켜 주겠다는 의도이다. 이 조항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의 인터넷언론사 게시판대화방 등의 실명확인(제82조의6)이라는 규정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실명제가 없어서 선거가 엉망이 되었나?
그렇다면 지난 2004년 4・15총선 때를 살펴보자. 정부는 인터넷실명제를 강제적으로 실시한다고 했지만 시민사회단체 및 인터넷언론, 기업들은 불복종을 선언하였다. 결국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실시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강제적인 인터넷실명제가 실시되지 못해서 국회의원 선거가 엉망이 되었을까? 우리가 알다시피 결코 그렇지 않았다. 수천 명에 이르는 선거사범이 발생했지만 주로 향응제공, 금품수수와 같은 고질적인 병폐였다. 특히, 당선이 무효가 된 사례 중에서도 인터넷과 연관된 것은 없었다.
인터넷 실명제, 주민등록번호 도용을 부추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전산망을 민간에 개방하여 강제적인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겠다고 안하무인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아연 질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주민등록번호는 한번 부여되면 전혀 바꿀 수 없는 고정불변의 인간 바코드 체계로, 자체의 반인권성을 떠나 사회적인 오남용으로 인하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의 4분의 1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가 도용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위해 중국인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여 사용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기 때문에 정부는 주민등록번호의 수집과 활용을 제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가 전산망을 민간기관에게 개방하여 주민등록번호의 오남용을 부추기는 것은 매우 황당한 정책인 것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기 위하여 국가 전산망의 개인정보를 인터넷 기업들에게 개방하는 것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반인권적인 폭거이다.
선거 중에 게시판에 글쓰기를 위해서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받아야겠다는 것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거짓 정보에도 쉽게 현혹되는 아둔한 존재로 여겨 윽박지르는 행위이다. 유출되고 도용된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것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그 기간에 주민등록번호가 도용되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정부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해 줄 것인가?
정치참여는 시끌벅적한 소통이다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서 선거 기간이면 모든 사람은 정치 이야기만 하는 것일까? 내가 일상의 관심을 표명하기 위해서 글을 쓰겠다는데 왜 정부는 주민등록번호를 달라고 하는 것인가? 설혹, 내가 정치적인 관심을 표명하기 위해 게시판에 글을 쓰겠다는데, 왜 정부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것인가? 선거는 시민의 광범위한 참여로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공간이어야 함에도, 정치인들과 정부는 국민의 쓴 소리가 듣기 싫어서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 아닌가?
물론, 선거 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 등과 같은 문제는 당연히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국가정보원의 개표 조작설을 여러 게시판을 오가며 유포한 네티즌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인터넷에서 실명 인증으로 글쓰기를 하지 않았던 신원미상의 범죄자를 신속히 검거 한 바가 있다. 인터넷에는 IP 주소(인터넷 규약 주소, TCP/IP로 통신할 때 송신원이나 송신처를 식별하기 위한 주소)라는 고유의 지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필요하게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아도 범죄자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정치적인 주제에 관하여 토론하거나 혹은 비난하거나 하는 행위는 자유의 영역이다. 또한, 정치참여라는 것은 시끌벅적한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제적인 인터넷실명제는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압적인 감시행위를 저지르려 하고 있다. 강제적인 인터넷실명제를 위한 모든 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