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학교이야기
가정통신문

김현식 / 포항 대동중학교 교사   yonorang@edu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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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에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홈페이지 운영 원칙’에 대해 설명한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그 ‘원칙’에 따르면 학교 홈페이지는 실명제로 운영하며, 학부모 아이디로 글을 쓰면 아이의 이름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 또한 ‘개인정보가 중요한 시대’라고 하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체에서 만든 홈페이지를 제공받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학교의 학교운영위원으로 있지만, 이러한 ‘홈페이지 운영 원칙’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학부모나 학생 의견과 상관없이 일부 실무자나 관리자에 의해 학교 내 중요한 정보화 정책이 결정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다수 학교가 홈페이지를 개설하지만,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운영 원칙을 정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주민등록번호 수집, 실명제 도입, 임의적인 글 삭제 등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실명제로 운영하는 학교 홈페이지에 자녀 이름으로 글을 쓰는 용감한 학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가 학교의 문제점을 대놓고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학교 홈페이지는 학교 공동체의 큰 축인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이버 공간’을 만들겠다고 하는 의지로 인해 학교 홈페이지는 인공 정원처럼 사람 냄새가 없게 되고, 아이들은 온갖 유혹과 익명성이 난무하는 다른 공간에서 마음대로 활개 치는 것이다. 학부모 역시 실제 학교 담장보다 더 큰 벽을 학교 홈페이지에서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쌍방향 소통이 쉬워지면 공동체가 좀 더 민주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의 정책 참여를 원하지 않고 있다.

종이로 인쇄되어 오는 ‘가정통신문’도 다시 생각해보자. 가정통신문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서 학생이나 학부모의 의견을 직접 빠르게 수렴하고 대화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여전히 예전 방식을 쓰고 있다. 가정통신문은 학교에서 알아서 정한 것이므로 학부모는 그대로 따르라는 ‘공문’과도 같은 형식이다. 어쩌면 학교 운영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과 논의하는 것은 가당찮다는 속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 소식은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웹진이나 메일링리스트로 보낼 수도 있다. 미디어를 활용하여 사진과 동영상 서비스도 가능하다. 소식을 주고받는 통신 수단은 눈이 부시게 바뀌고 있는데, 학교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뜻을 모아 마련한 합리적 정보화 정책이 없기에 학교는 자본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 사설 학원 등에 널리 퍼진 휴대폰 위치정보시스템 서비스, 자녀들의 등하교 상황에 대한 문자 메시지 서비스가 그것이다. 돈벌이가 된다면 무엇이건 달려드는 기업에서는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수익 모델을 창출함에 있어 학교는 좋은 먹이감이 된다. 프라이버시 침해와 인권침해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교에서는 이런 시스템을 별다른 고민 없이 도입하고 있다.
전교조와 시민단체들이 정보인권 수호를 위해 네이스 반대 투쟁을 펼쳐 큰 성과를 얻었다. 지금은 학교 현장의 정보화 정책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가질 때다. 교사와 함께 교육 주체의 하나인 학부모들의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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