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표지이야기 [게임등급제 논란 : 산업발전 vs 청소년보호?]
게임 등급제의 올바른 제도화 방향 :
게임에 대한 이해의 바탕에서 청소년의 관점으로 바라보라!

완군 / 문화연대 활동가   ssamwa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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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이론을 설파하는 라프 코스터는 재미를 느끼는데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굳이 그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재미는 인간됨의 핵심이고, 게임은 너무나도 재밌다. 식상하게 이웃나라 사람의 이름으로 글을 여는 이유는 라프 코스터가 게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욕망에만 들끓는 ‘핫’한 학자가 아닌 게임을 잘 이해하고 실제로도 즐기는 ‘쿨’한 유저의 입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산업의 계열, 화폐 가치의 실체로서 게임을 호명하고, 게임에 대한 그럴싸한 이론과 설명을 배경으로 한 지식으로서의 게임에 대한 진지한 충고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게임을 그저 즐기려는 이들과 게임을 설명하려는 이들 사이의 언어적 교감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지난 4월 28일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임산업진흥법)'이 공표된 이후, 게임물 등급분류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연령등급을 간소화한 게임산업진흥법에 대한 불만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언뜻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 낸 쟁점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게임을 두고 벌어진 오래된 논쟁의 반복일 뿐이다. 이번 논란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게임 산업에 대해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고 음비게법(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의 분법을 통하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향상하려는 목적으로 게임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했지만, 게임 향유에 대한 전통적 경멸이 여전하다는 역설적 상황을 입증할 뿐이다. 또한 이는 그 동안 게임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해왔지만, 여전히 게임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해가 부재함을 입증한다.

게임 규제논리, 청소년에 대한 통제와 게임에 대한 경멸에 기반
각론이 아닌 총론 중심으로 따져보면, 게임을 연령등급제 중심으로 사고하는 인식 체계는 청소년을 훈육과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게임에 대한 진부한 오해와 경멸에 기반한다. (미래의 주역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당당한 주체로서 청소년의 권리는 지면 관계상 차치하더라도) 게임에 대한 진부한 오해는 게임이 ‘놀이적 기능’에 기반하고 있으며, ‘놀이’를 바라보는 전통적 경멸에서 출발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게임이 다른 무엇을 포기할 만큼 ‘재밌다’는 것이다. (게임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서 얻어지는 교육적․훈련적 기능에 관한 논의는 따로 하지 않겠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심야시간에 온라인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이 늘어남에 따라 수면부족, 건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등 그 부작용이 심각하므로 심야시간에는 청소년들이 온라인게임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셧다운(shut down) 제도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건데, 이러한 논리적 전개는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놀이’, ‘재미’, ‘흥미로움’은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예술이 추구하는 시대적 가치이며, 꽉 짜인 규범과 제도의 규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감성적․심리적 측면의 안정을 위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검열이 아닌 심의, 청소년의 직접 참여가 전제되어야
물론, 현실적으로 연령등급제 자체를 완전히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연령등급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가지 합의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우선, ‘심의’의 개념을 제대로 잡고, ‘검열’이 아닌 온전한 의미의 ‘심의’를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심의가 실행될 수 있을 때 우리는 합리적인 등급을 이야기할 수 있다. 미디어 학자인 전규찬은 ‘1) 가려져 있던 사물의 참된 의미를, 2) 말을 통한 의논과 대화의 과정을 통해, 3) 자세히 밝혀내는 실천’이 심의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요소라고 밝힌바 있다. 우리의 게임 심의는 어떠한가? 심의의 탈을 쓴 검열이다.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보수주의 등의 강화, 표현을 둘러 싼 “맥락적 접근보다는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규제를”, “의논과 대화보다는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판단을”, “이성적이고 통합적이기 보다는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과정을”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심의가 아닌 검열의 질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당사자의 참여이다. 법률과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 해당 주체의 참여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간 청소년 관련 법률, 정책, 제도가 청소년의 현실에 부응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소년이 주체로 인정되지 못하고 언제나 타자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우려와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청소년들과의 직접적 소통이 배재된 상태에서 논의되는 것은 현실적 요구와는 전혀 다른 쓸모없는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청소년 관련 법률과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과 지향은 청소년의 시민적 권리의 증진과 문화적 감수성의 확장에 있어야 한다. 일방적인 게임등급제는 자칫 시민으로서의 청소년의 권리를 박탈하며, 청소년 문화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현재의 게임심의와 연령등급제도가 불완전하고 일방적이라는 <게임물등급제도개선연대>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의 동의는 현재의 심의가 과정이 아닌 제도, 대화가 아닌 기능에 머물고 있음에 대한 동의이다. 게임에 대한 보다 풍성한 논의와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에 앞서 진심으로 게임을 대하고 즐거운 놀이에 참여해 보기를 권한다. 직접적인 체험보다 중요한 경험은 없다. 체험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감수성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게임을 둘러싼 완전히 새로운 위치와 시선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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