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기획 [독점이 부른 병, 케이블 TV 수신료 인상 사태]
케이블 TV 시장, 독점인가? 정상화인가?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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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서울 관악구를 비롯해 부산, 수원, 김해, 전주 등지에서 케이블 TV 방송 사업자들의 기습적인 수신료 인상과 채널 변경이 줄을 잇고 있다. 이 때문에 방송위원회에 접수된 시청자 불만 처리 건수도 전년도 같은 기간(2006. 1. 1. ~ 4. 15.)과 비교해서 230%나 증가했다. 대부분은 케이블 TV 수신료 인상과 채널 편성과 관련된 내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종합유선방송사업자(아래 SO, System Operator)(*)에 의한 ‘독점의 폐해’로 규정하고, 시장점유율이 과다하게 높은 SO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방침을 밝혔다. 9월 24일 현대백화점 계열 SO인 (주)현대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HCN)의 대구 북부방송 인수에 대해, 유례없이 4개의 시정조치를 한꺼번에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방송위원회에도 유료방송 시장에서 SO 간 경쟁을 촉진하는 대책을 요구했다.
주민들의 대응도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올해 들어 케이블 방송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과 항의가 확산하면서, 지역마다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난 6월 16일 ‘케이블방송 독점규제와 난시청 해소를 위한 전국대책위원회(아래 전국대책위)’가 출범했다. 전국대책위는 출범 기자회견에서 “케이블 방송사의 독점횡포가 극에 달하고 무료보편의 시청권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심각성을 느낀다.”라며 SO와 방송위원회를 질타했다. 그리고 “방송이 거대 독점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유료 방송 가입 가구 수 1,400만

2005년 12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유료방송 가입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80%에 이른다. 그 중 케이블 방송 가입 가구 비율은 66.2%.(위성방송 10.4%, 중계유선방송 2.9%) 미국 59%, 프랑스 10.8%, 일본 35.9%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이처럼 유료방송 시장에서 케이블 방송의 점유율이 높은 것은, 소비자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안테나를 달아서 지상파 방송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난시청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2000년 방송위의 결정에 따라 유료 방송 시장은 SO 중심의 통합과정을 밟는다. 난시청 해소 역할을 하던 영세한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 Retransmission Operator)(*) 대부분이 SO에 합병되었다. 현재 케이블 TV 시청자 대부분은 그 당시 난시청을 피해 어쩔 수 없이 가입한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케이블 방송을 ‘보지 않을 권리’란 애당초 없었다.
박채은 미디액트 정책 연구원은 “케이블 방송은 원래 지역 기반 사업이다. 전국을 77개의 구역으로 나눈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위는 유선 방송 사업자 간 통합을 추진하면서 SO에 독점사업권을 주었다. 이후 SO 간 합병이 이뤄지고 ‘CJ케이블넷’이나 ‘티브로드’처럼 전국적인 체인망을 구축한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Multiple System Operator)(*)가 탄생했다. 케이블 방송 시장의 독점은 근본적으로 방송위의 정책 오류에 기인한다.”라며 방송위를 비판했다.
시장 왜곡이 아닌 시장 정상화?

SO는 시청자들과 공정위가 제기하는 ‘독점의 문제’를 수긍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케이블 방송의 디지털 전환 비용 확보와 양질의 콘텐츠 제공을 위해 그간 왜곡되었던 요금 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SO의 수입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사업 초창기였던 1998년, SO의 전체 수입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73.2%였다. 그러나 2004년에는 48.6%까지 떨어졌다. 반면 SO의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1997년에는 1,596억 원이었던 것이 2004년에 1조 3,479억 원으로 급증했다. 인터넷 접속사업, TV 홈쇼핑 송출 수수료 수입 등 수익구조가 다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수신료 인상의 또 다른 이유인 ‘방송 콘텐츠의 질 향상’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프로그램을 제작,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Program Provider)(*)의 허가제가 2000년에 등록제로 바뀌면서 PP의 수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SO들은 PP에게 수신료의 32%를 배분하던 것을 10~15% 수준으로 줄였다. SO가 케이블 방송을 통해 수신료 외의 다른 수익이 증가했음에도, PP에게 수신료 기준의 사용료만 지급하며 그 비율 역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SO는 채널 송출 조건으로 PP에게 각종 불공정 행위를 일삼아 왔다. 계약의 임의적인 변경이나 해지, 지분 출자 요구 등으로 지난해 공정위의 시정 조치를 받은 SO는 31개 업체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SO가 콘텐츠를 빌미 삼아 요금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방송의 주체는 시청자다

아날로그 방송 종료 시점인 2010년을 불과 4년 앞두고 터진 이번 사태는 디지털 방송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불충분함을 방증한다. 시청자는 케이블 방송이 아니면 지상파 방송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업체로부터 일방적으로 디지털 전환 비용을 청구받았다. 이용자인 시청자들은 소외된 채, 정부와 업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매체 정책이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펼쳐야 한다. 하지만, 방송위는 SO의 독점을 강화시키려고만 한다. 문제 해소를 위한 방법을 방송위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SO의 요금이나 채널 편성권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 사전에 방송위에서 승인을 받게 해야 한다. 또한, 업체별 약관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케이블 TV 요금 인상 정책만이 아니라, 디지털 방송 전환 사업 전반에서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다.
* SO : 케이블 TV 방송사업자. PP로부터 프로그램을 받아 일반 가정에 이를 공급하는 지역방송국. 관악케이블TV, 안양방송 등이 이에 속한다. 현재 77개 구역에 119개의 SO가 있으며, 이 중 44개 구역이 독점 방송구역이다.
* RO : 1960년대 초부터 난시청 지역에 공시청 안테나를 설치하여 지상파 방송을 단순 중계 송신하는 사업자. 2001년 이후 SO에 의한 인수?합병으로 사업자 수가 급감했다.
* MSO : SO를 2개 이상 소유하고 있는 회사.
* PP : 고유 채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SO에 공급하는 사업자. OCN, 투니버스를 소유한 ‘온미디어’ 같은 업체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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