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0호(200612) 여기는
인터넷의 제 문제와 정보 자기 통제권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조회수: 11867 / 추천: 90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기 전에 인터넷을 생각한다>(마크 포스터 지음, 김승현 외 옮김, 이제이북스, 2005)는 원제인 "What's the Matter with the Internet"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인터넷 공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태들을 망라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대략 이렇다. 주체와 정체성, 가상과 현실, 도구와 이성, 집단적 지능, 생산자인 소비자, 자본주의와 지적 재산 문제, 사회적 공공재, 정보 공유, 디지털 텍스트와 디지털 상품, 인터넷의 시공간 문제, 감시 사회, 온라인 민주주의, 공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성의 문제, 인터넷의 미디어 기능.

네트워커 지면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들이다. 인터넷도 사람의 일이라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그것과 대개 비슷하다. 저자는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미결정(underdetermination)'이라는 술어로 설명한다. 결정된바 없다니, 참 속편한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큼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지닌 유동적 특징 때문이리라. ‘인터넷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때문에 완전함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가령 검색 엔진은 그 자체 완결된 지식을 우리에게 전하지 않는다. 다만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 있게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여러 방법들을 제시한다. 인터넷은 여러 개별 정보들이 모여 거대한 전체를 형성한다. 틀린 정보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가 훨씬 많기 때문에 전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유기체처럼 미흡한 점을 스스로 보완해 나갈 수 있다. 자정작용과 자기치료를 수행한다. 인터넷에 실린 정보들은 완벽하지 않다. 그것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그저 그런 점을 잘 파악하고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

인터넷의 불완전성은 인터넷의 개방적 특성과 관련을 맺는다. 인터넷의 개방적 특성은 인터넷에서 완전히 사적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간하지 못한 사례는 예전에, KBS 여성 아나운서에게 술집 접대부 같다고 말한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때 문제를 악화한 것은 “하루에 몇 명밖에 방문하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라 문제가 될 줄 몰랐다.”던 당사자의 해명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인터넷 공간에 사적인 영역은 없다. 하루에 두어 명 찾아오는 웹 사이트도 순식간에 2만 명이 찾아올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 개인 웹 사이트라고 해서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적인 내용을 올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넷의 개방성으로 인해 생기는 부가적인 현상이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다.

그럼 불완전성, 개방성, 네트워크 효과 등 인터넷의 특성에 대해 인터넷 사용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나는 이것을 망라하는 주제는 ‘정보 자기 통제’라고 생각한다. 정보 선택권이 정보를 사용하는 이에게 있어야 한다는 이 간단한 문제로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정보를 자기가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흔히 지적하는 정보 과잉의 폐해들을 일단 떠올릴 수 있다. 오남용 문제가 빚어지는 것은 우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길들여져 있다. 따라서 인터넷 또한 자본주의의 속성 안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의 속성 중 가장 뚜렷한 것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다. 대량 소비를 위해 시장은 끝없이 확대된다. 전혀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분야에도 시장의 논리는 구석구석 파고든다. 대량 생산은 인터넷에서 정보 과잉 형태로 나타난다. 정보 과잉 문제를 언급할 때 정보 간섭 문제도 늘 함께 거론된다. 정보 간섭이란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정보가 끼어들어 집중력을 흐뜨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정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네트워커 지면에서 이미 여러 번 다룬 적 있는 무선전자태그(RFID)나 폐쇄회로 티비(CCTV)의 문제점은 정보가 자기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자기도 모르게 개인 정보가 활용된다는 것은 설사 그것이 공공 목적에 부합한다고 해도 신중하게 재고해야할 문제다. 전자명찰이니 생체여권이니 하는 것도 똑같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1980년 제정된 OECD 가이드라인은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개요를 제시한다. 수집 제한 원칙(개인정보 수집은 원칙적으로 제한돼야 한다), 내용 정확성 원칙(수집하는 개인정보는 정확해야 한다), 목적 명확성 원칙(개인정보 활용에 관한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용 제한 원칙(개인정보는 다른 목적으로 제공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 참여 원칙(정보주체에게는 자신의 정보 소재를 확인하고, 파기, 정정할 권리가 있다) 등 주요내용들이 결국 정보 자기 통제 문제로 수렴된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때로 부정적 기능을 하기도 하는데 타인의 프라이버시가 담긴 텍스트나 영상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인터넷에 공개, 유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공공의 알권리는 종종 서로 상충한다. 그러나 정보를 자기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보면 공공의 알권리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누구에게 이득인가, 따지기에 앞서 누구의 정보인가 먼저 살펴야 한다. 정보 자기 통제 문제를 중시하지 않는다면 크고 작은 속칭 엑스파일 사건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여, 그에 따른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고 해도 정보 자기 통제 원칙에 서 있다면 실상 별로 새로울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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