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 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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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2000년 대한민국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벤처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정보화란 그저 경쟁력의 하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에 대한 목소리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조금이나마 이런 목소리들이 만나고 토론될 수 있기를 바라며 'Hack! Cyber' 칼럼란을 마련하였습니다. 사회운동 각계에서 정보화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 온 분들, 각 지역의 정보통신활동가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들과 네티즌들이 서로 어우러져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게재를 원하시는 분은 글을 써서 운영자에게 보내주십시오. 검토후 실어 드리겠습니다.
* 일부 칼럼들은 인터넷 한겨레와 공동으로 연재합니다.

독서는 사치일까


이혜연 (도서관운동연구회)


하루 세끼 걱정안해도 되고, 적당한 휴식시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어야 독서를 할 수 있을까. 흔히들 책은 읽어야 하는데 여유가 없어서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하기에도 버겁게 사는게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이기 때문에 돈의 측면에서 보면 그 말은 일리가 있다. 무엇인가를 - 인쇄매체든, 전자매체든 - 읽고 나름의 감상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눈 뜨면 일어나 아침은 대강 거르고 학교로 아니면 회사로 총알같이 튀어나가기 바쁜 생활이 아닌가. 모처럼의 주말이면 축 늘어진 몸을 위해 잠을 청하거나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현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지식이나 지혜로 변환하는 자신만의 행위, 즉 독서는 사치스러운 정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지식정보화사회, 지식기반사회로 변화해 가는 지금 시점에서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국민 한 개개인의 지식력과 창의력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지도층은 말을 한다. 세계에서 독서 진흥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몇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이고 보면, 독서를 비롯해 국민의 지식력을 육성하기 위한 우리 국가의 노력은 칭송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독서를 권하는 사회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제도화를 통해서까지 독서의 성선설을 옹호하는게 아닐까 라는 의문을 낳게 된다. 독서를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시 강조하지 않더라도 국민 개개인의 지식력 신장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는 것에서 비판하는 능력, 응용하는 능력, 창조하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독서가 사치스러운 정신활동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우선, 안정적인 생활기반이 약하다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보장·복지·문화·평생교육의 기반이 빈약하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공동체적인 상호부조가 없다는 것이다. 제 몸둥어리 하나만을 믿고 생존해 가야 하는 처지에 정신능력의 계발은 사치이다. 단순한 유희나 오락을 통한 잠깐의 휴식이면 몰라도.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두번째 요인은 독서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지식정보에 관한 사회안전망, 사회기반시설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370개의 공공도서관이 있고, 공공도서관의 국민 1인당 자료구입비는 271원의 수준이다. 요즘 출판되는 단행본이 10,000원 정도의 수준이라면 국민 40명당 1권을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거리상 접근도가 떨어지는 공공도서관의 이용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버스타고 한참을 걷고 방문하는 공공도서관에 국가 홍보자료나 소설류, 심지어는 폐기하지 않고 그냥 권수만 채우고 있는 자료들만 있으니 누가 공공도서관을 독서기반시설로 이용을 하겠는가. 자료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고 수집해온 공공도서관의 자료는 국민 1인당 0.397권 정도이다. 거리상 접근도, 장서수, 자료구입비 등에서 볼 때 독서환경 조성을 위한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기반은 매우 미약함을 새삼 확인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2002년까지 3천억 정도를 투자해 도서관 정보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른바, '안방 자료실'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공공도서관에 관한 이렇다 할 정책을 수립조차 하지 않았던 정부에서 이번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쓰레기로 채워진 빈약한 공공도서관을 정보전산망으로 연결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외에도 독서가 사치로 여겨지는 데에는 보수적인 사회분위기, 능력보다는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계층상승을 하게 된다는 체념 등등의 원인이 있을 것이다. 독서가 사치임에도 불구하고, 독서는 필요하다 또는 독서는 좋은 것이라는 생각 또한 일반적으로 유포되어 있다. 단순히 좋은 것일까. 독서에 관한 성선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생각은 지식정보화 사회의 변화 시점에서 살아가기 위한 능력 또는 윤택한 생활을 꾸리기 위한 권리의 하나로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독서가 정보접근의 한 형태라는 의미에서, 또한 독서는 살아가기 위한 예비 연습 과정이며 생존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의미에서 전 사회적으로 독서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 이런 사회 기반시설의 확충을 통해 독서는 일부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스러운 정신활동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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