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 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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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2000년 대한민국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벤처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정보화란 그저 경쟁력의 하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에 대한 목소리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조금이나마 이런 목소리들이 만나고 토론될 수 있기를 바라며 'Hack! Cyber' 칼럼란을 마련하였습니다. 사회운동 각계에서 정보화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 온 분들, 각 지역의 정보통신활동가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들과 네티즌들이 서로 어우러져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게재를 원하시는 분은 글을 써서 운영자에게 보내주십시오. 검토후 실어 드리겠습니다.
* 일부 칼럼들은 인터넷 한겨레와 공동으로 연재합니다.

<딴지>도 대안미디어인가?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독일의 한 인문학자, 엔젠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란 사람이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실천적 전략을 구상한, 아직까지도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지침이 되는 유명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글 속에서 전자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꼭 현재 진행하는 인터넷의 기술적 태동을 이미 알고 이에 대비했던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의 글이 아직까지 살아 숨쉰다는 점이다. 그가 내논 대안 미디어의 실천 명제들이 이제 다시 보더라도 가장 핵심적인 사안을 건드리고 있다. 그 가 보는 뉴미디어의 장점은 탈중심성, 수평성, 상호작용성이고, 이를 통해 뉴미디어의 '해방적 이용'을 꾀하자고 주장한다. 즉, 그는 뉴미디어의 기술적 혁명성을 통해 이를 대중 동원, 정치적 학습과정, 집합적 생산, 사회의 자율적 통제 등의 도구로 활용하자고 외친다. 요즘 지겹도록 듣는 인터넷의 기술적 장점들이 30년전 그의 글에서 똑같이 예견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뒤에 열거한 뉴미디어의 해방적 이용 방식에 관한 것이다. 기술 적용의 과정을 고려한다면, 어떤 기술의 장점이란 기술 이용의 주체와 무관할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의 새로운 이용 방식에 대한 대안이 더욱 필요하다. 바로 엔젠스베르거가 얘기한 뉴미디어의 해방적 이용은 이러한 대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개인의 고립, 탈정치화, 전문가 생산주의, 재벌 혹은 관료통제에 맞서기 위한 뉴미디어 전략이었다.

조회수 수천만을 훨씬 넘는 초유의 인터넷 패러디 신문 <딴지일보>는 엔젠스베르거의 명제를 감안할 때 이같은 미디어 운동의 새로운 대안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 있는가? <딴지일보>의 위상을 그저 '건강한' B급 패러디로 보자면, 실천 운동으로서의 기대 심리가 웃긴 발상이겠으나, <딴지일보> 자체가 이미 'B'급에서 '특'급으로 격상한 상황에서는 뭔가 '딴지'를 걸어보며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한 듯 하다.

패러디는 보통 현실, 특히 우리에게는 정치'쇼'에 대한 냉소에서 비롯한다. 거대 권력들, 특히 정부, 언론 등에 대한 패러디는 관객에게 권력에 대한 말로 이루어진 배설과 독설의 헛웃음을 선사한다. 패러디의 치명적 약점은 소재는 다양한데 소구 방식(언어의 B급화)은 동일하다는데 있다. 소구 방식의 동일성은 '관객'을 지치게 만든다. 도저히 '동원'(mobilization)할 수 없는 '관객'과 함께, 비생산적 패러디의 반복되는 지루함은 의도했건 아니건 정치적 학습을 방해할 수 있다. 실지 <딴지일보>에서 보여주는 패러디의 효과란 다름아닌 언어 형식의 냉소적 비틀림인데, 이를 거세하면 '관객'은 뿔뿔이 사라진다.

어쨌거나 <딴지일보>는 인터넷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름없는 소수가 자신의 미디어 수단을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기고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집합적 생산의 힘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언론 재벌의 막강한 유통망을 비집고 힘없는 소수가 자신의 디지털 매체를 통해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수매체적 영향력이 <딴지일보>의 역량 그 자체보다도 그 패러디 소재들에서 근원한다면 문제가 크다. 거대 권력의 노는 꼴이 정치쇼라면, <딴지일보>가 이 정치쇼 덕분에 스타가 되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삶에 지쳐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대포집에 거하게 취해 열변을 토하는 아저씨들이나 손님 올라타자마자 정치 얘기 꺼내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의 풍경이 이 시대 서민의 억압에 대한 상보적인 배설 습관이라면, <딴지일보>에서도 비슷한 동기가 충분히 감지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맹목의 배설이 되지 않으려면 상호작용하고 이슈화하고 동원하여, 그 힘으로 사회적 통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율적 상호 '연결'의 힘들이 중요하다. 현실의 실천적 힘이 충원되지 못할 때, 그 매체는 이미 공허하다. <딴지일보>의 운명은 권력의 쇼가 진행되는 한 영원하다. 우리의 3류 날나리 정치권력 하에서는 제2, 제3의 정치 패러디 사이트가 생길 수 있으며, 짭짤한 조회수를 계속해서 기록할 수 있다. 그 속에서 패러디의 소위 '건강성'은 다른 집단과 연결하고 관계맺고, 이를 공론화된 힘으로 바꿔내는 노력이 없을 때는 쉬 노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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