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 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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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2000년 대한민국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벤처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정보화란 그저 경쟁력의 하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에 대한 목소리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조금이나마 이런 목소리들이 만나고 토론될 수 있기를 바라며 'Hack! Cyber' 칼럼란을 마련하였습니다. 사회운동 각계에서 정보화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 온 분들, 각 지역의 정보통신활동가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들과 네티즌들이 서로 어우러져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게재를 원하시는 분은 글을 써서 운영자에게 보내주십시오. 검토후 실어 드리겠습니다.
* 일부 칼럼들은 인터넷 한겨레와 공동으로 연재합니다.

한국통신이 진정으로 비난받아야 할 점



김현우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지난 달 국정감사에서 한국통신이 맞은 몰매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인터넷쇼핑몰, 각종 포털서비스, 인터넷 방송 등 부가통신사업에서 한통은 지난해 3천4백9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공공 전화사업에서 남긴 이익을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분야에 쏟아붓는 잘못을 저질렀다. 따라서 한통은 외국의 NTT나 AT&T의 사례처럼 비핵심 분야를 분할매각하고,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한통 경영의 문제점은 국정감사 이전에도 숱하게 지적되어 왔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일보>가 10월 17일부터 세 차례의 기획으로 연재한 "한국통신... 부실늪에 빠진 공룡"이라는 기사였는데, <중앙일보>가 삼성의 인터넷 사업에서 잠재적 경쟁자인 한통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기사였지만 주류언론의 시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기획이기도 했다.
이 기사를 보면 한통이 정말 별 걸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예를 들어 한통이 운영하고 있는 종합인터넷 쇼핑몰 "바이앤조이"는 인터파크나 삼성몰 등과 충돌하고, 인터넷데이터센터(IDC)는 하나로통신이나 데이콤도 하는 사업이며, '한클릭' 인터넷접속 서비스는 네오위즈 등과 겹친다. 금융포털사업은 삼성캐피탈 등과 경쟁해야 하고, 한통의 "크레지오"말고도 이미 숱한 인터넷방송 솔루션 업체들이 있으며, 허다한 검색 포털 서비스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통은 "한미르"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장 규모가 큰 초고속인터넷 사업에는 물론 한통의 "메가패스" 말고도 하나로통신, 데이콤, 두루넷, 드림라인 등이 막대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니 수익이 제대로 날 리가 없고, 한통도 이라한 문제점을 일부 인정하고 개선안을 내놓고 있는데, 그 핵심은 현재 59%에 달하는 정부지분을 2002년 6월까지 국내외에 매각하여 완전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별 걸 다하는 한국통신

정부와 주요 미디어의 입장은 한마디로 '민영화와 분할매각'으로 모아진다. 방만한 내부 경영상태와 노무관리역시 민영화와 구조조정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통 경영진의 생각은 이와 약간 차이가 있는데 국정감사에서 한국통신 사장은, 민영화의 구조조정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쫓기듯이 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추진할 문제이고 분리매각은 정부 부처 일각의 생각일뿐 자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IMT2000 사업의 향배가 관건이라는 경영자의 입장이 전제되어 있다.
이에 대한 반발도 없지 않으니 그 한 쪽은 민영화가 야기할 고용불안을 염려하는 노조쪽의 반발이다. 특히 얼마전 한국통신의 외국인 소유한도를 현행 33%에서 49%로 확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법률안이 입법예고되면서 이 반대 대열에 민주노동당 등 다른 사회단체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국내 기간산업을 외국으로 팔아넘기는 것에 대한 반대가 다른 한쪽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영화가 진행될 때 소외 지역이나 계층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 약화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염려도 크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한국통신의 많은 문제는 오히려 충분히 '공기업적'이지 않아서 일어난 현상들이다. "바이앤조이"나 "한미르"가 왜 한국통신이 해야할 일인가? 그것은 공기업이 재벌들과 똑같이 문어발식 확장과 사기업식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한국통신 역시 시장에서의 수익이 지상목표가 되었고 이를 위해 천민적 행태의 사업확장에 동참했다는 말이다. 한통이 그런 사업들을 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입는 피해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는 아무런 공익적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한통의 수익확대 동기와 함께,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통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동기가 있었을 뿐이다. 이는 두말 할 나위없이 자본주의 시장의 제 1조이다. 공익성에 근거한 사업확장이었다면 분할매각따위는 운운할 필요도 없었다.

비난받아야할 것은 한통 뿐인가?

민영화와 분할매각이라는 대안은 그 자본주의적 기제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으면서 다시 '경쟁과 효율'이라는 처방전을 내놓는 꼴이다. 한통이 충분히 '공익적'이지 않다는 것을 문제삼는 게 아니라 충분히 '상업적'이지 않다는 것을 문제삼는 발상이라는 말이다.
이는 국가차원의 정보통신산업 정책이 부재했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은 국가 정보화를 가름하는 중요한 부문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나 재경부는 아무런 설계없이 이를 처음부터 사기업의 자유경쟁에 맡겨버리고 말았다. 한국통신이나 한국전력같은 공기업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기간망(백본망)을 기반으로 민간기업과 똑같은 시장원리를 가지고 경쟁해왔다. 그러나 초고속 인터넷망 사업이 기약없는 돈쏟아붓기 출혈경쟁이라는 것은 이미 자명해졌고, 이 와중에도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의 지역격차나 집단간 격차는 전혀 해소되지 않고있다.
혹자는 일본이나 프랑스는 국가가 정보화를 주도함으로써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에서 오히려 한국에 뒤쳐졌다는 이상한 이데올로기를 유포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고학력자와 고소득자 중심으로, 그리고 쇼핑몰과 상업컨텐츠 중심으로 초고속 인터넷망 구조가 구축되는게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든 사회복지 차원에서든 효과적이라는 계산은 어불성설이다. 반면에 한통의 "메가패스"라는 초고속망의 보급이 국민에게 왜, 어떻게 필요한지에 대한 계산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민영화가 대안인가? 애초에 민영화는 경제적 계산과 다소 무관한 이데올로기일뿐이다. 민영화는 결국 '사영화(私營化)'라는 말이다. 그 원말인 'privatization'에도 민(民 또는 people)이 설 곳은 없다. 결국 문제는 정보산업의 공공성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공기업이 공익적 사업을 수행하면서 기록한 적자라면 3499억원은 그리 큰 것이 아니다. 그런 적자라면 정부가 감당해 주어야 한다. 또한 수익 또는 적자규모와 무관하게 정부는 공익적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해야만 한다. 대안역시 민영화가 아닌 제대로된 '공영화', 민영화가 아닌 내부적 '민주화'이다. 이는 자명한 논리이되, 신자유주의 시대에 유독 망각되어 가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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