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 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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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2000년 대한민국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벤처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정보화란 그저 경쟁력의 하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에 대한 목소리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조금이나마 이런 목소리들이 만나고 토론될 수 있기를 바라며 'Hack! Cyber' 칼럼란을 마련하였습니다. 사회운동 각계에서 정보화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 온 분들, 각 지역의 정보통신활동가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들과 네티즌들이 서로 어우러져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게재를 원하시는 분은 글을 써서 운영자에게 보내주십시오. 검토후 실어 드리겠습니다.
* 일부 칼럼들은 인터넷 한겨레와 공동으로 연재합니다.

진보네트워크 운동의 고민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실장)

진보네트워크 운동의 고민 - 진보적인 기술은 무엇인가?

컴퓨터와 인터넷이 이렇게 우리 생활 깊숙이 확산된 것은 매우 최근에 이르러서이다. 몇년 사이 기술적으로 엄청난, 그리고 급속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술 담론인 것 같다. 벤처 열풍, PC방 붐 등 각종 유행과 더불어 어느새 '대박'과 '최신'의 업그레이드, 기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은 거부 못할 흐름이자 진보적 가치가 되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조선일보의 구호는 이 세태가 생각하는 진보의 상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치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집단에서도 예외 없이 통용되고 있다. 왜? 기술은 선량하게 진화하는 것이라고들 믿기 때문에.

애초 진보네트워크센터를 태동시킨 것은 '정보통신기술을 사회운동의 무기로!'라는 매우 명백한 구호였다. 1996년 12월 노동법·안기부법이 날치기 통과되면서 전국을 뒤흔들었던 총파업의 열기는 '노동악법·안기부법 전면철회를 위한 총파업통신지원단'(총파업통신단)을 탄생시켰고 이는 당시 정보통신기술과 사회운동의 접맥을 고민하던 이들에게 매우 강력한 집결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이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후반 PC통신이 등장했던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등장한 '녹두BBS', '참세상BBS', '북소리BBS', '사발통문BBS', '대자보BBS'등 수많은 '진보BBS'가 '진보 통신 운동'을 주도했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소위 '음란사설BBS' 파동으로 위기에 몰린 사설BBS에 대한 수요를 PC통신 경쟁 구도가 흡수하면서 상업통신망의 수많은 동호회, CUG(Closed User Group, 폐쇄이용자그룹)에서 소위 '진보 커뮤니티'에 대한 실험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경험의 연장선에서 총파업통신단은 온라인 서명·말머리 달기 온라인 시위·블랙리본(로고) 캠페인·온라인 토론회·영문 속보 운영 등 가능한 온라인 행동을 총동원하였다. 정세적 사안의 중요성도 한 몫을 더해 이들의 활동은 한국사회운동 진영의 강한 주목을 받았고, 당시까지만 해도 온라인에서 그치는 경향이 강했던 온라인 활동이 오프라인(!) 사회운동진영의 주요한 활동 전략으로 부상하게끔 자극했다. 무엇보다 이때 한국사회운동 진영은 독립네트워크와 이를 운영하기 위한 활동가 집단의 필요성을 확인했고, 천 명에 가까운 추진위원과 발기인들이 모여 1998년 마침내 진보네트워크와 노동네트워크를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이것이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이때까지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들에게 일관되게 부여되었던 역할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잡아 활용하는 것이었으며, 누구나 이것이 진보로 가는 길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이 삼 년에 접어들면서 진보네트워크 운동가들은 이것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사회운동 진영이 겪게 마련인 재정난, 인력난, 그리고 장비와 기술력 부족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은 - 짐작보다 심각한 것이라 할지라도 -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다. 우리를 정말 힘들게 했던 것은 다른 문제였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출범하고 몇 달 뒤 민주노총은 CUG를 상업통신망인 나우누리로부터 진보네트워크센터의 PC통신망 '참세상'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소규모의 '참세상 커뮤니티'를 운영해 왔던 낡은 시스템은 갑자기 늘어난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평소보다 더 자주 에러 메시지를 내기 시작했다. 회선도 불안했다. 참세상을 쓰기 시작한 노동조합 간부들이나 현장 노동자들은 불안한 시스템에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렸고 나우누리가 제공하는 기능 하나하나를 언급하며 같은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전할 수 없다고(이전한 뒤에는 도로 옮겨가겠다고) 호통을 쳤다. 나우누리의 '진보동호회'인 찬우물에서는 학생들이 민주노총 CUG 이전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항의 때문만이 아니라 격렬해지고 있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장 새 기계를 들여올 수 없었던 형편상, 활동가들은 24시간 당·숙직조를 편성하고 기계 옆에 붙어 앉아 하루에도 수십번씩 재부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년간 상근비를 받지 않으면서 시스템 구축에 돈을 짜들인 끝에 시스템 불안에 대한 항의는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수고로움이야 진보네트워크센터가 그 출발서부터 사회운동 진영에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문제는 진보네트워크와 그 안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철저하게 기능(인)으로만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밖에서는 동지인 이들이 진보네트워크센터에 전화를 걸 때면 철저한 소비자가 되었다. 낡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기준은 상업통신망이었다. 빠르게 개선되는 상업통신망에 비해 참세상의 인터페이스는 날이 갈수록 불편하게 느껴졌고, 요구와 항의는 끊임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문의를 받기 때문에 답변 태도가 친절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곧잘 듣는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진보네트워크가 상업통신망과 '경쟁'에서 패할 것이 자명하며 자연사하는 것이 기술적인 진화에 맞는 순리라고 믿는다.

그렇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출발서부터 지금까지 되풀이해 듣는 질문은 "왜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왜 사회운동 진영에서 굳이 이런 인적·물적 자원 투여를 해야 하는가? 더구나 기술적인 면에서 명백하게 '진보적인' 정보통신산업과 상업통신망이 존재하는데.

게다가 참세상 서비스의 많은 문제는 '아직도' PC통신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BBS 시스템은 인터넷 시스템에 비하여 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갈 뿐더러 인터넷 시대에 충분한 기능을 제공할 수 없다. 도대체 이 시스템을 계속 존속시켜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얼마전 지역·분야별 독립네트워크들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전주에도 진주에도,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의 많은 단체들이 추진했던 독립 BBS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단체들이 웹진이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같은 전략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었지만, 결국 시장의 논리에 의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낡은 BBS 시스템이 진보 진영에서 가장 먼저 파산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안그래도 최근 주요 PC통신업체들은 "PC통신은 망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듯 하다.(문용식, 'PC통신은 망할 것인가?', 사이버저널, 2000/06/12일자.) PC통신 시스템은 다른 기술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따라서 사양화해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아마 "왜 진보네트워크인가"에 대한 질문들도 이런 생각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상업통신망이야 이제 발상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수익 모델'로 옮겨 가겠지만, 본의 아니게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시스템을 부여잡고 상업통신망과 경쟁하고 또 거기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진보네트워크 운동으로서는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정보통신운동은 표준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무어의 법칙이 깨졌다고는 하지만, 정말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기술적 환경에서는 따라가는 데만 해도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요구된다. 따라서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배적인 '표준'에 신속히 적응하는 것이 최선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똑같이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운동의 '목표'와 '대안'이 적정기술, 토착기술과 같은 '다른' 과학기술(대체 에너지 운동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로 상정되는 것과 매우 대비되는 대목이다.

사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고민은 세계 여러 나라의 진보네트워크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어려움이다. 진보통신연합 APC(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는 최근 "지속가능한 네트워크 운동은 무엇인가?"는 주제의 '비즈니스 기획'을 시작하였다.(http://www.apc.org/english/ngos/business/index.htm) 진단에 따르면 비교적 일찍 사회운동의 네트워크화를 추진했던 각국의 진보네트워크·비영리 인터넷서비스제공업자(non-profit ISP)들이 최근 상업통신망의 확장 때문에 이용자 격감·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훨씬 더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통신망이 있는데 일부러 진보네트워크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APC는 다소 난감한 처방을 내놓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진보 진영'을 '틈새 시장'(niche market)으로 삼아 상업통신망과 적절하게 제휴 또는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운동과 돈을 조화'(Balancing Mission and Money)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우리는 충분히 고객들의 신뢰를 받는 '좋은 사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난감한 것이 소수 입장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진보네트워크를 열심히 쓰는 한 활동가는 "기업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단체라는 명목으로) 상근자들만 고생하는 것이 아닐까?"며 진지하게 충고하기도 하였다. 확실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보네트워크가 일관되게 요구받는 것은 보다 안정적이고 신속히 제공되는 -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는 기능이었다. 시장의 논리에 의하지 않고 이것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APC는 "대안적 ISP를 운영하려면 다른 요술 처방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기술을 시장 논리 속에서만 판단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시장의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 더 나아가 '시장의 기술'을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극복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지금처럼 공공 영역을 극도로 해체하는 신자유주의적 맥락에서 정보 기술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시장 안에서 기술은 빠르게 발달했지만 동시에 상품화와 식민화 또한 몹시 급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 상품성이 없는 지식은 가치가 없다. 저작권으로 묶인 정보에 일체의 공공성은 없다. 기술은 발달하면서 점점 더 독점되고 있으며 누가 특허를 선점하느냐가 중요한 화제거리이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녹을 받는 국립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벤처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운영프로그램으로부터 응용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술 표준은 1세계와 초국적 기업에서 장악하고 있으며 인터넷 정책은 이들의 이해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인터넷 등급제와 같은 검열 기술은 날로 발달하고 있으며 작업장마다 감시 기술이 확산되고 있다.

정보화는 철저한 경쟁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며 아무도 사회적 약자의 진입 장벽과 보편적 서비스를 책임지지 않는다. APC는 접속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상업통신망의 확산으로 국민의 보편적 서비스가 실현되었다는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의 정보화 추세로도 온라인 의료와 교육 혜택이 가장 먼저 미쳐야 하는 지역에서는 아직도 '정보화'가 남의 이야기이다. 인프라가 도시에 집중되어 발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부 인터넷 교실은 수료생 백만명을 배출하겠다지만 이들이 실생활에서 인터넷을 쓰기 위해 서는 가정마다 백만원을 주고 컴퓨터를 사야만 한다. 공공 접속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나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기본적인 전화 인프라조차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 태반이다. 우리가 지금 앞서 가는 자들만을 위한 기술을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술의 사회적 맥락은 기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발달 방향을 규정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술의 발달을 곧 '진화'이며 '진보'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 기술은 이미 충분히 정치적인데, 많은 이들이 여전히 기술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적 기술에 대응하는 우리의 정치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기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 정치적 상상력을 복원해야 한다. 기술에 대해 복종하면서 우리가 실종시켜 버린 것과 소외시켜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야 할 때이다.

지난해 아시아에서 진보네트워크 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라디오 모뎀'이라는 상당히 흥미로운 발명품을 소개받았다. 이 모뎀이 요즘 뜨고 있는 무선 모뎀과 다른 것은 근본적으로 부족한 아시아 국가들의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안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80년대에 폐기처분해버린 AT 기반에서 돌아가는 이 모뎀은 가히 정보통신기술의 적정기술, 토착기술이라 할만 하다. 실제로 이 기술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이런 상상조차 이미 포기한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GNU/리눅스, 냅스터, 그누텔라도 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GNU/리눅스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는 공유될 수 있고 또 공유되어야만 생산적"이라는 정신을 기술적으로 구현하였고, 그 존재 자체가 소프트웨어 특허론자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생생한 증거이다. 냅스터와 그누텔라는 저작권중개자들의 이해에 따라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MP3 파일포맷과 그 자유로운 교환을 정면으로 옹호하였다. 이외에도 영국의 해커들이 추진하고 있는 '프리넷'은, 네트워크 안에서 갈수록 투명해지고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개인들의 익명권을 철저히 보호함으로써 '자유로운 인터넷'의 본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런 시도들은 기술과 기술 담론의 빈틈에 도전해서 그 질서에 균열을 낸다.

그러나 리차드 스톨만이 최근의 리눅스 열풍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기술 자체는 도전과 식민화 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계속 긴장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편리함'에 대한 유혹이다. 가장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자상거래 사이트는 '쿠키' 기술을 이용해 내 컴퓨터 안의 정보를 가져가고 있다. 기술의 편리함에 현혹되면 될수록 우리의 정신은 마비되고 판단 능력은 서서히 정지되어 간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왜 참세상 BBS가 존속되어야 하는가?

사실 기술적 요구는 어느정도 기술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참세상으로 말하자면, BBS와 웹을 연동시키는 기술로 인터넷에 대한 요구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네트워크 서비스는 늘 무한경쟁의 괘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노력이야 하겠지만, 자고 일어나면 저만큼 앞서 가 있는 상업적 기술을 끝없이 쫓아갈 처지가 되지 못한다.

한가지 해답은 '참세상' 시스템을 위에서 언급한 하나의 정치적 고안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국가와 자본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네트워크, 우리 스스로 만들고 유지해 가는 네트워크.

그러나 기술에 대한 실용적 접근과 정치적인 접근이 서로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정치적 기술의 지뢰를 피해가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이 언제나 평탄한 과정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매순간 어떤 기준에 의해 '우리의 기술'이 선택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네트워크의 궁극적인 생명력은 네트워크임으로 인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이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존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영리 사회운동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유지하고 필요로 하는 이용자들, 그들이 이 네트워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 네트워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참세상은 여러모로 부실한 시스템이었지만 지하철 노동자들의 7일 파업에 PC통신과 인터넷 중계로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었다. 당시 절정에 이르렀던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막연한' 서비스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었을 때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넘겨달라는 수사기관들과 옥신각신하면서, 안티포스코 홈페이지를 저작권 위반으로 묶어버린 포항제철에 항의하는 전세계 얼굴 모를 활동가들과 온라인으로 만나면서, 그리고 저녁이면 각자의 직장과 학교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로 모여드는 활동가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긴장을 놓치 않는다. 아니, '못한다'. 부러 이 낡고 불편한 시스템을 선택한 활동가, 그리고 이용자들이 진보네트워크 운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이 세련된 기술을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싸움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돌아가려고 하는 진보네트워크 운동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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