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 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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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2000년 대한민국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벤처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정보화란 그저 경쟁력의 하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에 대한 목소리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조금이나마 이런 목소리들이 만나고 토론될 수 있기를 바라며 'Hack! Cyber' 칼럼란을 마련하였습니다. 사회운동 각계에서 정보화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 온 분들, 각 지역의 정보통신활동가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들과 네티즌들이 서로 어우러져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게재를 원하시는 분은 글을 써서 운영자에게 보내주십시오. 검토후 실어 드리겠습니다.
* 일부 칼럼들은 인터넷 한겨레와 공동으로 연재합니다.

대중매체여, 이제 고이 잠들라!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텔레비전이 나온지 어언 반세기. 그 건방진 태도는 여전하다. 근대적 가치 체계와 피의 동맹을 맺은 이 단순무식하고 포악한 선전-기계는 아직도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메시지와 정보에 일방적인 순응을 강요해오고 있다. 그나마 이 기계가 자신의 부드러움을 과장하기 위해 통신원 제도, 시청자 참여/감시 프로그램 등의 되먹임(feedback) 과정을 도입해보지만, 힘의 우위에 입각한 메시지 생산자와 수동적 수신자간 경로의 암묵적 일방향성이 사라지는데는 역부족이다.

몇 해 전 대한민국 방송사 이래로 초유의 선전-기계 시설의 폭력적 점거로 기록된다는 '만민중앙교회' 열혈 신도들의 MBC 방송국 난입 사건. 그러나 이 사건이 '교주'를 위해 한 몸 바치려는 광신도들의 빗나간 점거 전술이라는 점에서, 애석하게도 대중매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중의 폭력적 교란과 전복의 전사(前史)는 아직까지 없다. 이 선전- 기계는 나날이 그 파워를 배가해 나간다. '진지한' 활자 언어를 찍어대는 일간지들과 더불어, 이 영상 선전-기계는 일상 삶의 영역을 구태의연하게 그리고 획일적으로 대중 선동과 체계 훈육의 장으로 길들인다. 굳이 프랑스 사회학자인 부르디외가 '텔레비전에 대하여' 얘기한 내용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이 기계는 '균질화', '통속화', '순응화', '탈정치화' 등을 자신의 최대 장기로 삼는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는 이 영상 기계에 맞서 새롭게 바리케이트를 치는 게릴라 테크놀로지에 미래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 이미 전세계 정치적 실천 그룹들에게 80년대부터 꾸준한 사랑을 얻었던 8미리 비디오는 그 한 예이다. 빗발치는 다국적 위성 전파의 여백에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일구는데, 이 게릴라 기계는 큰 힘을 발휘했다. 국내에서 8미리는 90년대 중반이후, 일부 소규모 지역/노동 운동가에 의해서 제 몫을 찾아나가고 있다. 8미리 비디오는 선전-기계와 다르게 그 게릴라적 특성과 어울리는 대상 세계의 다름에서 빛을 발한다. 즉, 게릴라 기계는 이를 다루는 주체들의 성격과 그들의 세계에 대한 정치적이고 이질적이고 비순응적인 가치와 함께 살아 숨쉬어야 한다. 이에 대응하여 권력의 선전-기계가 이용하는 홈비디오 수렴/포섭 과정은 이러한 비순응적 주체와 가치에 대한 체제내 길들이기에 다름아니다. 예컨대, 이미 거대 매체의 프로그램 옵션으로 간간이 등장하는 일부 시청자 참여 비디오 프로는 선전-기계에 순응하는 법을 터득한 '죽은' 필름들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한 번 이 게릴라 기계는 제대로 된 도약의 부푼 꿈을 키우고 있다. 이 아날로그 영상기계과 디지털 6미리 영상기계가 광활한 네트워크를 타고넘음으로써 자신의 힘을 끊임없이 복제하는 것. 체제 저항 집단들의 정치/문화적 감수성을 값싼 공유 기술로 표현하고 그것을 일파만파로 확장하는 새로운 디지털 영상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장'의 전제는 또 다른 선전-기계들의 현금화와 상업화 수단으로 묶이는 현재와 같은 500개 이상의 인터넷 방송 붐이 아니라, 특유의 대상 세계를 갖고 비순응적인 태도를 지닌 집단들이 생산하는 디지털 대안방송의 '볼륨을 높'이는 장이어야 한다.

체제의 질곡은 끊임없이 반(反)정보를 생산해낸다. 체제의 질곡은 '역능'(potentia)에 비례한다. 역능은 권력에 반하는 가능성의 힘이다. 한 시스템 내에서 힘들간의 충돌은 대개가 체계적 권력과 게릴라식 역능들의 경합 과정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그 양자의 힘겨루기 과정은 대개 체제에 손을 들어주기 십상이다. 그 이유는 시스템의 거대한 흐름에,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 폭력의 기차에 휩쓸려 모두 동승해야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트 게릴라들의 역능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단순무식한 선전-기계의 포악함이 지배할 여지가 훨씬 크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는 '너무 낙관적이지 않게' 새로운 디지털 게릴라 영상기계들의 전성 시대를 예감하고, '정리해고'될 거대 언론 공룡들의 영원한 빙하기를 '전투적으로' 그리는 일일 게다.

N E T W O R K E R No CopyRight, Just Copy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