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 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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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2000년 대한민국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벤처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정보화란 그저 경쟁력의 하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에 대한 목소리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조금이나마 이런 목소리들이 만나고 토론될 수 있기를 바라며 'Hack! Cyber' 칼럼란을 마련하였습니다. 사회운동 각계에서 정보화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 온 분들, 각 지역의 정보통신활동가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들과 네티즌들이 서로 어우러져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게재를 원하시는 분은 글을 써서 운영자에게 보내주십시오. 검토후 실어 드리겠습니다.
* 일부 칼럼들은 인터넷 한겨레와 공동으로 연재합니다.

네트의 삐끼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물리적 공간에서 특정 목적지에 이르는 길까지 꼬시는 이들을 점잖 지 않은 말로 '삐끼'라 부른다. 한마디로 호객하는 이를 지칭한다. 자본 주의 사회에서 삐끼들은 사람에서부터 추상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 양하게 발전한다. 호객은 음침할수록 소구 효과가 크다. 즉 삐끼가 추 상화되고 비가시적일수록 받아들이는 사람의 거부감을 제거하는 경향 이 있다. 또한 삐끼는 소비의 덕목과 공생한다. 호객의 목적이 궁극적 으로 소비를 유발시키는 과정이라면, 삐끼는 소비와 함께 살고 죽는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광고는 소비자를 상품 구매의 최종 목적지까지 유인하는 추상적 형태의 삐끼다. 광고주와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시청 률을 올리기 위해 별의별 기법들을 동원해 왔다. 텔레비전은 매체 특 성상 시청자의 시선과 밀접하다. 그 시선을 지속적으로 잡아둘 수 있 는 힘이 시청률이자 미디어 기업의 수익원이었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끊임없이 광고와 프로그램의 시각적 연쇄를 통해 시청자의 눈을 잡아 두려 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시청자의 의지에 의해 리모콘으로 영상의 흐름 을 중단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물론 그 중단까지의 과정이 어렵다 하 더라도,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내키지 않는다면 그저 이를 무시하고 꺼 버리면 그만이다. 사실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에게 보길 강요하는 가장 강력한 밑천이라곤 시각 영상 이외에는 없다. 형식상 강제로 시청자의 머리를 자신의 모니터 속으로 쑤셔넣지는 않는다. 이에 반해 자유의 공간이라고 칭송되는 네트는 어떠한가?

아이러니하게도 네트는 텔레비전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눈에 쉽게 띄 지않는 삐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갖춰가고 있다. 특히 네트 기술의 상업적 전용은 사용자의 자율 의지를 기술적 수단을 통해 가로 막으면서도 동시에 교묘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해롭다. 대체로 네 티즌을 골탕 먹이는 네트의 삐끼들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부류들이 있다. 우선, 초보적 수준의 삐끼는 인터넷 사용자가 다른 사이트로 이 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전(back) 버튼이 아예 작동하지 못하게 한 다. 주로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로 그러한 루프(loop)를 꾸미는데, 윈 도우창을 하염없이 닫아도 계속해서 또 다른 창들이 뜨게 만드는 것도 이와 비슷한 기법이다. 이를 벗어나는 길은 모든 창을 닫고, 삐끼에게 서 도망치는 길밖엔 없다.

두번째는 좀 더 점잖은 부류이다. 이들은 주로 메타태그(metatag)를 활용한다. 메타태그에는 인터넷 문서의 기본 확장자(html) 코드내에서 그 페이지가 담는 정보가 위치한다. 예컨대, 문서 제작자와 갱신일 등 과 해당 페이지를 검색할 수 있는 주요 검색어들이 자리한다. 검색엔 진에 주로 오르는 단어들, 예를 들어 '섹스' '야사', '공짜', 'mp3' 등의 검색어를 이 메타태그에 넣는다면, 이러한 사이트들의 검색률은 당연 히 증가할 것이다. 메타태그의 삐끼란 경쟁자의 키워드를 자신의 메타 태그에 심거나, 확률 높은 검색어를 자신의 메타태그에 끼워넣어 네트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이런 삐끼들에게 걸리면, 사용자는 자 신도 모르게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고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 번째 부류로 위장된 상업 광고들을 연결시켜주는 삐끼가 있다. 이것은 주로 포르노 사이트들에서 볼 수 있는데, 아이콘이나 텍스트 자체의 상징성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트릭을 주로 사용한다. 네트에서 보여주는 아이콘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와의 인터페이스를 고려하여 제 작되기 마련이다. 즉 어떤 아이콘이나 텍스트를 누르면 그 것에 연결 된 페이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대충은 이용자가 알게끔 고려한다. 그 런데, 일부 사이트들은 그 연결 페이지의 추측을 무위화한다. 수많은 상업용 웹페이지들은 광고를 전혀 광고라고 눈치챌 수 없는 도상과 텍 스트로 위장하여, 다시 한번 덫을 친다.

마지막으로 한번 온 손님을 기억하는 삐끼들이다. 특정 방문객의 정 보를 기억하는 쿠키(cookies)란 기술은 소비자를 맞춤화하는데 제격이 다. 이 기억력 좋은 삐끼들은 이용자에게 형식상 초대받은 손님이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결국은 최종 소비까지의 클릭을 단숨에 유 발하기 위한 덫으로 돌변한다.

이처럼 네트의 삐끼들은 사용자가 가는 길을 막거나, 엉뚱한 수렁으 로 빠뜨리기도 한다. 재수없으면 못빠져나가게 이들에게 억지로 잡히 는 수도 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용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정해진 길을 잡아주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쨌거나 네트의 삐끼 들은 인간이 고안한 어떠한 기술보다 사용자와 '인터렉티브'한 듯 하 다. 지루한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이만큼 스릴넘치고 완벽한 키잡 이가 어디 있겠는가. 정 자신의 자율신경이 떨어지는 자들은 삐끼들의 뒷꽁무니를 부지런히 쫓을 법하다.

N E T W O R K E R No CopyRight, Just Copy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