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장애없는
정책 결정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 참여가 필요하다

윤성태 / 한국방송통신대학 시각장애인 동호회 회장   balard@myfi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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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요즈음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희망적인 미래를 보는 듯하여 위안이 될 때가 많다. 현재는 총론에 있어서는 당사자주의에 모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아직은 시각차이가 조금은 있는 듯하다. 당사자들이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까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어떤 정책 결정 문제에 직면하면 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인 단체와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 단체와의 미묘한 갈등은 보기 싫은 장면 중의 하나이다. 물론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여러 유형의 장애우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들 역시 장기적으로는 시정되리라 믿는다.
당사자들이 아닌 분들의 정책 결정이 실제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실제는 당사자가 아닌 분들이 나름대로는 좋은 정책이라고 제시한 것들이 당사자들에게 외면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니 예산낭비도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았다면, 그 예산도 효율적으로, 보다 많은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장애인에게 외면 받는 장애인 정책들

장애인교육에 있어서는 정작 언론에 홍보하는 것과 실제 장애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도는 차이가 많은 것 같다. 방송대학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농아 학우들의 학습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시범적으로 몇 과목에 수화 동영상을 삽입했는데, 건청학우들은 도움이 되었으나, 실제 중증 농아학우들에게는 정작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만일 이러한 경우에 제작진들이 농아 학우들의 의견을 먼저 청취했다면 보다 많은 농아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시각장애인들의 학습 역시 지난번에 소개한 대로이다. 작년까지 MP3로 된 학습교재를 공급한 적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물론 다른 시각장애인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MP3 CD 학습교재를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고 말았었다.
지체장애인 학우들의 학습 문제 역시 열악한 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3년에 각 대학에 보낸 지침에서, 국공립 대학은 공공시설로 보아 2004년 10월까지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으나, 방송대의 여러 학습관에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아직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물론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려면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그 예산이 잘 집행되도록 하려면, 장애인에 관한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참여했어야 했다. 장애인을 모르는 분들이 장애인의 교육 예산을 담당한 결과가 결국에는 많은 예산낭비를 부른 것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대안을 제시한 내용이기는 하나, 장애인 전문가와 당사자들의 참여 없이는 앞으로도 겉도는 정책이 시행될 개연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국립대학이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침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립대학은 오죽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일 것이다. 우리 시각장애인 동호회의 투쟁으로 시각장애인 학우들의 학습 환경이 개선되었던 것처럼,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단의 노력으로 장애인 자립생활 예산을 확보했듯이, 백원우 국회의원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한 계기로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 구강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듯이 말이다.

서로 다른 장애 유형에 대한 배려 필요

다음으로, 다른 장애 유형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차원에서의 정책 대안 제시를 하는 것은 어떨까? 방송대와 우리 시각장애인 동호회가 교과서 공급 문제로 많은 간담회를 했었다. 처음에 제시한 안은 조금은 예산이 많이 드는 방안이었다. 우리 동호회에서는 어차피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이 예산을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같이 나눠서 써야하므로 교과서 공급에 있어 지나친 예산을 쓰게 되면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이 상대적으로 예산에서의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최종 합의안은 텍스트와 비슷한 파일 유형을 공급하되 예산이 가장 적게 드는 방안으로 하자는 데에 의견일치를 하게 된 것이다. 만일 우리 동호회에서 예산이 많이 드는 안을 수용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시각장애인에게만 예산이 편중 지원이 되지 않았겠는가? 늦은 감은 있으나 최근에 성실하게 대화에 임해 주신 방송대학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처럼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한다면 좋은 방안은 얼마든지 도출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으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 가장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는 안마사의 문제가 그것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시각장애인의 유일한 생존 수단인 안마사 제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사실에 대하여는 잘 아실 것이다. 이 문제를 짚고 가고 싶은 것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하여 논리가 왜곡된 측면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말 직업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면, 사회보장에 대한 책임과 장애인들에 관한 국가의 책무는 평가 절하되어도 좋단 말인가?

아래의 헌법 내용을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제34조 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15조와 34조를 같이 보시고, 과연 15조만큼 34조는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도 좋단 말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헌법 15조에 직업자유권이 보장되어 있다면, 헌법 제34조에 사회보장에 관한 국가의 의무가 있는데, 이러한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상황과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 가지 조항에만 치중해서 판결한 헌재의 판결은, 재판관들의 가치관은 논할 필요도 없이, 경제 논리로만 판결이 되어도 좋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혹자는 안마사 제도를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와 유사한 사례, 즉 장애인에게만 특정 사업을 하도록 하는 사례는 세계 여러 국가에 많이 있다. 미국의 자판기 사업과 스페인의 복권 판매 같은 예가 그것이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직종을 갖기 힘든 장애인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다른 직업을 갖기 힘든 장애인들의 유일한 생존권이 달려 있는 직업마저 빼앗긴다면, 당장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삶을 유지해야한단 말인가? 최근에 국회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 자격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통과시켜 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으나, 비장애인 맛사지사분들이 다시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사 독점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헌을 낸 것은 심히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에게도 중요한 직업과 생계를 위한 국가의 배려 약속이 지켜져야 할 것인데, 지하철의 자판기, 신문 가판대 사업 등이 그것이다. 아직도 많은 자판기 사업이 비장애인의 손에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로써, 여러 유형의 장애우들이 한데 힘을 모아 우리의 것으로 되찾아 와야 할 생계수단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회적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점자유도블럭을 길에 설치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인데, 그 좋은 길을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불안을 느끼며 걸어야 한다. 점자유도블럭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 자동차가 정차되어 있어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이다. 점자유도블럭이 설치되어 있는 길은 시각장애인들이 길을 가도록 배려한 일련의 조치로써 일종의 사회적인 약속으로 지켜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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